나라에 도(道)가 없으면 벼슬에 나가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김종석은 시묘(侍墓) 살이가 끝나가고 3년 만에 치르는 과거시험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동생이 자신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종직이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서도록 설득해보라고 말씀드렸다.
"종직의 학문과 문장은 누구도 따르지 못합니다. 동생의 재주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를 크게 받던 아들이 과거에 뜻이 없다는 사실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종석의 말에 종직을 불렀다.
"진정 과거에 뜻이 없는 것이냐?”
"어머니, 조정은 간사한 무리들이 차지하고 있어 도(道)를 이미 상실하였습니다. 지금 조정은 너무나 어지러운 곳입니다. 벼슬에 나간다고 해도 배운 바를 하나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아들들은 물론 집안에 출입하는 제자들까지 뒷바라지하며 고생하신 어머니였다. 종직은 주름이 늘어난 어머니의 얼굴을 가까이 대하니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애써 진정했다.
"선비의 길이 벼슬에만 있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공자님은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벼슬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세상은 어지럽고 도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린 왕이 쫓겨나고 절의를 지킨 어진 신하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벼슬에 나갈 때가 아닌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던 아들이었다. 자신의 말이라면 결코 거역하는 일이 없었던 종직의 간절한 말에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김종석은 한성에 벼슬하러 올라가는 전날,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너의 건강이 많이 상했는데, 그 몸으로 천릿길 한양에는 갈 수 있겠느냐?”
어머니는 아들이 삼년상을 지내느라 건강을 해친 것이 안쓰러웠다. 종석은 엷은 미소를 띠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종직이도 함께 한양에 올라가 이번 과거를 치르게 했으면 합니다. 천릿길을 동행하면 든든하기도 할 것이고요. 오늘 밤 안으로 종직을 설득해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그날 밤늦게 종직을 불렀다.
"내가 오랫동안 너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너의 생각을 존중해서 과거를 보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참아왔다. 너의 말대로 선비는 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옳다.”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너는 문종이나 어린 선왕의 녹을 받지 않았으니 따지자면 그분들에게 빚은 없는 셈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선비는 배운 학문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써야 한다고.”
어머니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이 딱해 보였다.
"네 말대로 세상에 도(道)가 없다면 과거에 급제하여도 왕을 가까이 모시지 않으면 된다. 조그마한 지역의 수령이라도 되어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도 배운 학문을 실천하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네가 가르치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는 것도 안다. 지방의 수령이 되면 좋은 제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낙담하고 웃음을 잃은 것이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도학(道學)을 배운 제자들을 조정에 많이 진출시켜 군자의 기운이 가득하고 백성을 위하는 나라를 만들려던 꿈을 품으셨다. 알다시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종직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기는 것을 느꼈다.
"형이라고 너와 같은 마음이 없었겠느냐? 아버지의 뜻을 살펴 벼슬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형도 병으로 몸이 쇠약해졌으니 네가 형의 짐을 덜어주어야겠다.”
김종직이 대답 대신 묵묵부답 고개만 숙이고 있자, 어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벼슬을 하여 녹봉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살겠느냐? 농사를 짓겠느냐?”
종직은 어머니의 말에 당장 긍정도 부정도 못한 채, 방에서 물러나왔다.
김종석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종직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철들기 전부터 효가 모든 행동의 기본이라고 배웠다. 부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그다음은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러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벼슬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계신 동안은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김종직은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어머니의 염려와 눈에 띄게 쇠약해진 형의 말을 모질게 뿌리칠 수가 없었던 종직은 엉거주춤 형과 함께 한양으로 향했다.
김종직은 복잡한 심정으로 과거에 응시하였다.
과장(科場)에서 과거시험의 두루마리가 떨어지자 유생들은 부산하게 답안을 써 내려갔다. 김종직은 책문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한참 동안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눈을 감으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너는 선왕의 녹을 받지 않았으니 절의를 지킬 빚은 없는 셈이다.”
"급제하여도 왕을 가까이 모시지 않으면 된다. 멀리 떨어진 지역의 수령이 되어 백성을 잘 다스리고, 좋은 제자를 기르는 것도 학문을 배운 보람이 될 것이다.”
눈을 떴으나 붓을 잡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으니 부모님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너는 훗날 대제학이 되어 도학을 조선의 선비들이 모두 알게 해야 한다.”
"벼슬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살겠느냐? 농사를 지어서 배를 불리겠느냐?”
김종직은 한식경이나 시간을 흘러 보내고, 이윽고 마음을 정했다.
김종직은 비로소 책문을 읽어보았다. 김종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 천천히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김종석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어 과거 합격자 방이 붙기도 전에 예조에 달려가서 대과에 함께 동방 급제한 친구를 찾아 종직의 합격 여부를 알아보았다.
"종직아, 합격이다!”
김종석은 종직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종직은 형과 함께 아버지 무덤이 있는 남쪽 밀양을 향하여 두 번 절했다.
김종직은 과거에 급제한 후 첫 발령으로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승문원의 종 9품 부정자(副正字)로 임명되었다. 승문원 건물 앞에 아름드리 괴(槐) 나무가 심어져 있어 승문원을 괴원(槐院)이라고도 하였다. 괴나무(槐木)는 괴(槐)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나무, 혹은 회화나무가 되었다. 회화나무는 나무 가지의 뻗은 모양이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하여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리며, 궁궐은 물론 문묘, 서원이나 향교에 주로 심었다.
김종직은 승문원에 출근을 하면서 어린 왕을 몰아내고 죽이기까지 한 불의한 왕의 밑에서 벼슬을 하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훗날 누군가가 춘추필법으로 역사를 쓴다면, 이들 무리와 섞여있는 나를 어떻게 볼까?’
김종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을 달랬다.
‘종 9품 말직이니 임금을 가까이 대할 기회도 없다. 일단 고을 수령이 될 수 있는 품계까지 오르면, 고향 근처에서 수령을 하며 백성을 돌보고 제자를 기르자.’
김종직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를 조용히 입에 올렸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시샘하니
청강(淸江)에 맑게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