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큰 스승이 되다 (6)

도(道)가 없는 세상이라면, 벼슬의 뜻을 접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by 두류산

6장


김숙자는 과거시험을 앞두고 제자와 아들의 공부를 점검하였다.

과거에서 책문(策文)으로 물을만한 과제를 뽑아,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과 당, 송나라를 거치는 중국 역사에 비추어 답을 찾아 강론하며 풍부한 견해와 안목으로 답하는 방법을 강의하였다. 김숙자는 큰 아들 종석과는 달리 종직이 과거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김숙자는 종직을 따로 불렀다.

"과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연유로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냐?”

종직은 아버지의 물음에 당황하였으나 마음을 추슬렀다.

"저도 아버님이 보여주신 절의를 따르고자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종직은 깜짝 놀라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결심한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님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렸습니다. 정몽주 선생과 길재 선생의 절의를 이으시는 아버지한테 배운 제가 어찌 도(道)가 없는 세상에서 벼슬하는 꿈을 꿀 수가 있겠습니까?"


김숙자는 상기된 얼굴로 거침없이 말하는 아들을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김숙자는 길게 한숨을 쉬고 종직에게 말했다.

"내가 벼슬을 그만둔 연유는 너의 말이 옳다. 하지만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종직은 어리둥절하여 아버지를 보았다.

"일찍이 나의 스승은 두 왕조를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고려는 나의 나라이지만, 조선은 너의 나라다라고 하시고, ‘너는 전 왕조에 대한 빚이 없으므로 벼슬길에 올라 글에서 배운 것을 새 왕조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쓰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김숙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세종대왕 때 벼슬에 나가 녹을 받기 시작하여 문종과 그의 아들이신 어린 왕의 녹을 받았다. 그래서 어린 조카의 왕위를 대신하여 새 임금이 된 수양대군의 녹을 의리상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의 경우는 다르다.”

김종직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벼슬에 올라 집현전 학사가 된다 하여도 도(道)가 없는 왕과 함께 어찌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벼슬의 뜻을 접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김숙자는 아들의 단호한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옳다고 인정하고 격려할 수는 없었다.

김숙자는 생각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

"네가 왜 밤낮으로 학문을 닦고자 힘썼는지 생각해 보아라. 경전에서 말하기를,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밝은 덕을 밝히는 일과 백성을 살피고 사랑하는 일이 학문하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학문을 닦은 연후에 배운 바를 널리 실현해야 한다.”

"말씀대로 도(道)를 이루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학문을 했다고 하나, 도를 실현할 만한 자질이 없는 의롭지 못한 군주를 돕기 위해 기어이 벼슬길에 오른다면 이는 아버지가 가르치신 절의와는 맞지 않습니다.”

김숙자는 아들의 말에 명치끝이 아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늘은 이 땅에 성리학을 널리 알릴 종직의 재주를 기어이 버리려는 것인가?’


김숙자는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너의 말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아프다.”

종직은 아버지의 긴 한숨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집안은 미미하여 관직에 오른 사람은 집안 전체로 두어 사람뿐이다. 나는 좋은 스승을 만나 학문을 제대로 배우고 벼슬길에 올랐으나, 탄핵을 받아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너는......”

김숙자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말을 멈추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나의 꿈을 이어받아 훗날 대제학이 되기를 바랐다. 성리(性理)에 관한 신유학을 조선에 널리 알려, 조선 유생들의 풍습을 혁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과거에 뜻이 없다니, 어찌하여 하늘은 이 나라와 우리 집안에 이토록 인색하단 말인가!”

가슴속에 있는 말을 토해내고 고개를 젖혀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종직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김종직은 아버지의 가슴속 깊은 아픔을 알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서는 성균관 전체 시험에서 1등을 할 정도로 학문과 문장이 높았다. 과거에 급제한 후 성균관 교수와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가,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다.

그 후 복직하여 학문이 뛰어나 세자의 스승으로 뽑혔으나 조강지처를 버린 일로 다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학문에 밝고 행실이 훌륭한 사람을 뽑아 스승으로 삼을만한 선비의 명단을 만들 때 제일 앞자리에 이름이 올랐으나, 이번에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이름을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사기 혼인을 당하여 혼인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점이 인정되어, 훗날 사면이 되어 벼슬에 복직했다.

하지만 조강지처 건은 평생의 굴레로 아버지의 발목을 잡아 가진 뜻을 펼 수가 없었다.


김종직은 아버지가 몸이 쇠약해 자리에 눕자, 등이 떠밀리다시피 형과 함께 문과 초시인 향시(鄕試)를 치르는 경상도 감영(監營, 관찰사가 있는 관청)이 있는 상주로 향했다. 초시에서 뽑는 인원은 전국적으로 240명이었는데, 경상도의 급제 할당 인원은 30명이었다.

김종직은 과거시험에 붙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빠르게 답안을 쓰고 과거를 보는 장소에서 나왔다. 시험 결과는 형과 함께 합격이었다.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다음 해 봄, 김종직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의 전송을 받으며 형과 함께 문과 회시(會試)를 치르기 위해 한양 과거 길에 올랐다. 회시는 초시 합격자 240명 중에 33명의 대과 급제자를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김종직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벼슬을 하고 안 하고는 자신의 일인데 모질게 결단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시험장에 들어간 김종직은 과거 책문이 적힌 두루마기가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기존에 있는 제도를 바꾸려면 폐단이 생기는 것이 고금의 일반적인 근심거리다. 이는 다스림의 도(道)와 관련이 있는데, 자세한 것을 기술하라.”

두루마기가 펼쳐지고 책문이 드러나자 과장(科場)에 앉은 유생들의 탄식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김종직은 눈을 감고 책문의 답을 생각하고는 붓을 들어 초안을 잡지도 않은 채 바로 써 내려갔다.

"마음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고, 법은 정치를 하는 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천하가 태평성세이면 새로운 법이 왜 필요하며, 바꿀 제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하가 태평성세가 아니어서 부득불 법이나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윗사람 된 자가 마음을 다해 도(道)를 중히 여겨 정치를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옛날 현명한 임금은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데 이와 같이 했을 뿐이었습니다.”


김종직은 붓에 먹물을 다시 묻히고, 지금 세상에는 도(道)가 없음을 드러내어 비판하였다.

"부자와 군신, 부부관계를 비롯해 모든 인간관계에는 일정한 질서, 즉 도(道)가 있고 인륜이 있습니다. 도가와 불교는 인륜을 저버리게 하는 이단입니다. 궁궐에서 해와 달과 별에게 제사를 지내는 소격전을 두고, 임금의 생일날 부처에게 복과 수명의 연장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한 어떻게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으며, 어떻게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라겠습니까?”

김종직은 왕과 조정의 신하들이 솔선수범하여 도(道)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답안을 마무리했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 심하게 따라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윗사람이 먼저 실천하여 도를 구하면, 상하의 예(禮)가 바로잡힐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법과 제도로 구할 수 있는 효과는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김종직은 다 쓴 답안을 다시 읽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제출하고 과장(科場)을 빠져나왔다.


과거 합격자의 방이 붙었다. 형인 김종석과 아버지의 제자로 함께 공부한 박숭질은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김종직의 이름은 방에 없었다.

김종직 형제는 과거를 마치고 한양에서 다시 밀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밀양에 내려온 김종직은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과, 아버지의 애절한 소망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그렇게 만든 어지러운 세상을 원망하며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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