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요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결혼하여 한 여인의 남편이 되었다.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빠가 되었다. 두 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비타민 드링크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며느리가 손자를 임신하면서부터, 우리 부부의 일상은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 태중의 아이를 우리는 ‘장군’이라 불렀다. 며느리가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긴장하며 결과를 기다렸고, 매번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주 손자가 세상에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임신 25주째, 세상에 나오기까지 대략 105일 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백일해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백일해는 만성 기침병으로, 걸리면 백일 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중한 손자에게 백일해가 걸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아들 부부, 삼촌까지도 미리 예방주사를 맞았다.
손자가 태어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아기의 소중한 순간들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가족들과 공유하는 앱이 있다. 실시간으로 손자의 일상을 쫓으며, 그의 성장 과정을 함께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몸을 바둥거려 뒤집기에 성공하는 동영상에 감동하고, 높은 열로 발진이 생긴 얼굴 사진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천진난만하게 자는 모습과 목욕 후 윤기 나는 얼굴, 어깨춤을 추는 동영상과 태권도 발차기, 의젓하게 이발하는 모습, 어느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드러운 볼과 붉은 입술, 작은 손과 발, 순수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손녀 태양이가 태어났다. 딸이 귀한 집에 태어난 첫 증손녀의 탄생이었다. 아들만 둘을 키워서 그랬을까. 손자에 이어 손녀가 태어났을 때, 인생의 또 다른 신비와 즐거움을 느꼈다. 갓난아이가 소녀가 되고, 여고생과 여대생이 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기쁨이자 행복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아들이 손녀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에서 손가락을 작은 손에 쥐여주니 손녀가 아빠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아빠다. 언제나 네 손을 놓지 않으마.”
손녀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 나는 교회 계단을 오르다 넘어질 뻔했다. 아내는 나에게 운동을 시작하라고 권했다. 두 살도 안 된 손자와 이제 막 태어난 손녀를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는 곧바로 헬스장에 가서 PT를 등록했다.
손자 손녀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유치원부터 결혼까지 그들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며 좋은 할아버지로 남고 싶다. 언제나 그들의 편이 되어줄 할아버지, 힘들 때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할아버지, 닮고 싶은 할아버지로 말이다. 나의 삶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리고 그들이 내 기억을 간직하는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구부정한 모습보다 자세가 반듯하고 활기가 있는 할아버지가 좋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열심히 PT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