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 전시회를 다녀와
I. 금강전도·인왕제색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한눈에 펼쳐졌다
붓 하나로
나를 새가 되게 하여
구름보다 높이 금강을 날게 했다
인왕산에 내린 비는
붓끝에서
안개로 피어났고
병든 벗
쾌유를 비는 마음은
바위틈 사이사이 스며들었다
II. 경교명승첩
한강 위,
벗의 시가 한 수 피어오르면
정선은 그 시를 물빛에 풀어
그림으로 건넸다
강변 풍경을 붓으로 그리면
벗은 그 마음을 시로 읊었다
백아와 종자기처럼,
정선과 이병연은 서로의 심금을
붓과 시로 울렸다
III. 산수도
와유(臥遊), 누워서 떠나는 산수유람
병든 이의 머리맡엔
정선의 그림이 펼쳐졌고
걸을 수 없는 자는
누운 채로 금강을 올랐다
정선은 그림으로 길을 내고
눈길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IV. 계상정거도
정선이 떠난 지 삼백 년,
천금을 주어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천금물전(千金勿傳) 인장은
그림 위에서 여전히 붉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갑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냈다
물가의 집에서 책을 읽는 퇴계
시간을 건너온 먹빛이
지금 내 손안에 숨 쉰다
문득 깨닫는다
겸재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