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을 건너온 먹빛

겸재 정선 탄생 350주년 전시회를 다녀와

by 두류산


I. 금강전도·인왕제색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한눈에 펼쳐졌다

붓 하나로

나를 새가 되게 하여

구름보다 높이 금강을 날게 했다


인왕산에 내린 비는

붓끝에서

안개로 피어났고

병든 벗

쾌유를 비는 마음은

바위틈 사이사이 스며들었다


II. 경교명승첩


한강 위,

벗의 시가 한 수 피어오르면

정선은 그 시를 물빛에 풀어

그림으로 건넸다

강변 풍경을 붓으로 그리면

벗은 그 마음을 시로 읊었다

백아와 종자기처럼,

정선과 이병연은 서로의 심금을

붓과 시로 울렸다


III. 산수도


와유(臥遊), 누워서 떠나는 산수유람

병든 이의 머리맡엔

정선의 그림이 펼쳐졌고

걸을 수 없는 자는

누운 채로 금강을 올랐다

정선은 그림으로 길을 내고

눈길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IV. 계상정거도


정선이 떠난 지 삼백 년,

천금을 주어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천금물전(千金勿傳) 인장은

그림 위에서 여전히 붉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갑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냈다

물가의 집에서 책을 읽는 퇴계

시간을 건너온 먹빛이

지금 내 손안에 숨 쉰다

문득 깨닫는다

겸재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20250503_112420 (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라나시(Varan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