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많은 5월 토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을 찾았다.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예매해 준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보기 위해서다. 두 달 전,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후쿠오카 감옥을 찾아 묵념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이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무대 위에는 이십 대 청춘이 죄책감에 짓눌려야 했던 시대의 어둠이 펼쳐졌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청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수치와 자책, 무기력 속에서도 시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고백은 통곡처럼 울렸다.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스스로를 탓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면 더욱 깊은 자책에 잠기던 윤동주. 살아 있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졌던 그 시대의 청춘이 무대 위에서 재현되었다.
윤동주 역의 배우 김용한은 시인의 고통과 조용한 저항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했다. 특히 「별 헤는 밤」을 읊조리는 장면은 숨을 삼키게 했다. 별을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어머니를 부르던 순간, 그의 어조는 달라졌다. 그리움이 북받쳐, 마치 토하듯 어머니에게 그 이름들을 전한다. 소학교 친구, 비둘기, 노루, 릴케... 그리운 이들을 향한 절절한 호명은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라는 시인의 목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가무극이다. 시의 음률을 살린 노래는 극의 정서를 더 섬세하게 전하며, 80년 전 별이 된 시인을 오늘의 무대 위로 불러냈다. 이 공연은 윤동주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윤동주 시인은 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와 노래, 침묵 속의 외침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향해 조용히 내려앉아, 우리 곁에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