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시를 ‘본다’ 혹을 '읽는다'고 말하지만, 정재찬 교수는 『그대를 듣는다』에서 시를 ‘듣는다’고 말한다. 시를 읽는 일은 백 미터 출발선에서 선수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침묵에 집중하듯, 타인의 삶과 감정을 ‘경청’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시에서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시인의 목소리, 나아가 그 목소리 너머의 ‘침묵’까지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말보다 말하지 못한 침묵 속에 더 깊은 진실이 담겨 있다. 시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시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까지 읽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좋은 시는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태어난다. 이 책은 시를 쓰는 이는 ‘말하기’ 이전에, ‘들어야’ 한다고 암시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시의 본질이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했다. 시는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릴 때’ 살아난다는 통찰, 그리고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을 잘 ‘듣는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마지막 장 ‘죽은 시인의 사회와 그 적들’에서는 우리 교육이 잃어버린 ‘키팅 선생'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 개성을 억제당하고, 감동과 질문은 사치로 여겨진다. 이러한 현실은 ‘키팅 선생’ 같은 존재가 숨 쉴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문학, 철학, 예술이 중심이 되는 교육,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학교와 사회 모두 변화할 수 있을 터이다. ‘시를 듣고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태도는 교육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이다.
정재찬 교수의 전작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시에 대한 문턱을 낮췄다면, 『그대를 듣는다』는 독자를 더욱 깊은 경청과 공감의 자리로 이끈다. 시를 통해 삶을 듣고, 사람을 듣고, 결국 나 자신을 듣는 여정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대를 듣는다』는 시를 읽는 이에게는 깊이를, 시를 쓰는 이에게는 방향을 제시한다. 앞으로 시를 쓸 때마다 되묻게 될 것이다. 이 시는 먼저 ‘들었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