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의 참회록
짐작조차 못 했다
인간이 얼마나 깊은 어둠으로
스스로를 내몰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짐승이 될 수 있는지
참회록처럼 펼쳐진
무겁고 부끄러운 역사의 기록
공항처럼 삼엄한 문을 지나
내 손에 쥐어진 한 장의 신분증
홀로코스트에서 사라진
실제 유대인의 것
이름, 사진, 생년월일, 마지막 흔적들...
그의 눈으로,
전시실을 보았다
합법적인 시민으로 세금을 내고
1차 대전에서 훈장도 받았지만
다윗의 별이 가슴에 달린 순간
인종쓰레기가 되었다
상점의 유리창은 돌에 부서지고
수영장, 공원, 놀이시설은
그에게 닫혔다
누군가 시나고그에 불을 질렀으나
소방수는 물대신 잡담만 날렸다
뜰에서 웃으며 식사하던 가족
가스실 앞에 줄을 섰고
남겨진 신발, 산처럼 쌓였으며
잘린 머리칼, 방석이 되었다
육백만 명의 생명
세상은 침묵하고 방관하여
문명세계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다
전시실을 나오자
벽면 가득한 사진들
식탁, 스키장, 놀이공원...
그들이 즐거워하며 찍은 사진
죽은 자들의 웃음이 귓전을 때린다
70여 년 전 그때의 악몽은
오늘도 지구 어딘가에서 되풀이된다
인종청소, 대량학살...
인류는
참회의 언어를 잊고 있다
이 박물관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증오에 물들고
얼마나 깊게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차가운 거울이다
기억하라
잊지 말라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