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뱅크 출장길
워싱턴 하늘에 몸을 맡겨
열두 시간 반, 대양 위를 건너고
모래바람 부는 도하에 내려
다시 일곱 시간 하늘의 바다를 항해
마침내 히말라야 품에 안겼다
산은 어둠 속에서
성스러운 숨을 고르고
카트만두의 전기는 자주 끊겨
하얏트 호텔조차
작은 손전등 달빛으로 방을 밝힌다
물을 산에 이고 있는 네팔
빙하의 심장에서 녹아내린 젖줄
그 물로 불 밝힐 내일을 꿈꾸며
세계은행의 자본
한국 건설회사의 땀으로
산허리에 터널을 뚫어
낙차 큰 심장박동으로 전기를 만든다
헬기 아래
깎아지른 봉우리들
신의 어깨처럼 펼쳐지고
우리는 잠시 그 품에 안겼다가
산 중턱 공사 현장에 내렸다
정부의 규제
공사의 발목을 잡고 있어
풀어 달라는 나의 말
네팔의 재무장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고심의 그림자 가득한 얼굴들에
미소가 피어난다
카트만두에서 차로 네 시간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포카라에 닿는다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히말라야 설산이 말을 걸어온다
야자수가 더운 숨을 쉬고
위로는 눈 덮인 산의 겨울 왕관이 빛난다
산속 호텔의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안나푸르나
수영장 물거울에 비쳐
내 눈 속에 들어와 앉는다
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며
시간의 바깥에 서서
영원을 바라보는 착각에 빠졌다
빙하를 녹여 마시며
태초의 산과 대화하니
신선계에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