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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젠 나고야성터, 유비무환을 새기다

by 두류산

한때 20만 명 영혼이 들끓던 성터

돌담 이끼는 수백 년 세월을 묻고

푸른 하늘 아래 쓸쓸히 선 나무

바람결에 실려 오는 한숨이 땅을 스친다

이곳이 조선 땅으로

칼끝을 향했던 비극의 시작점


1592년 4월 1일, 죽음의 병선 700척

파도를 가르며 어둠처럼 밀려와

열이틀 만에 부산포에 핏빛 발을 내디뎠다

총성과 비명 소리

짓밟힌 백성들의 신음소리

포승줄에 묶여 끌려온 조선 백성들

낯선 땅에서 지옥을 경험하며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들의 눈물

역사의 화석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박물관에 들어선다

웅장한 천수각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풍신수길의 초상은 피로 물든 야심을 내비친다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으리

다시는 되풀이 말자는 다짐으로

유비무환을 되뇌며

무너진 성터를 걷는다



*규수 사가현에 있는 히젠 나고야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전초기지였다. 2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성이었으며, 대형 조선소가 있었다. 성터에 오르면 바다 건너 대마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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