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족 수첩

행복론: 내 삶의 캔버스에 어떤 색을 칠할 것인가

by 두류산

우리는 언제 행복하다고 하는가? 대개 통장에 충분한 돈이 쌓여 있고, 건강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완벽할 때라고 답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상적인 조건을 평생 쫓는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날씨와 같다. 맑은 햇살이 있는가 하면, 예고 없이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한다. 만약 행복이 외부 조건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행복의 문턱에서 서성거려야 할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질병, 오해로 멀어진 관계, 노력해도 오지 않는 성과 앞에서 우리는 쉽게 행복이 나를 피하는 걸로 단정하기 쉽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삶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부르는 태도는 무엇일까?


한 목사님 가정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는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깊은 절망감이 어두운 그림자 되어 목사님을 덮쳤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목회에 집중하라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절규 속에서 하나님이 답을 주셨다. '내가 이 아이의 부모를 찾다가, 너희 부부를 선택하여 믿고 맡겼다.' 목사님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뒤로 아이가 하나님이 맡긴 선물로 보였다. 선물을 바라보는 목사님의 마음도 행복해졌다고 했다.

사모님의 마음도 같았다. 마음 놓고 울 곳이 없었다. 교회에서는 혹여 셋째 아이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웠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이 막내가 짐이라고 생각할까 봐 눈물을 삼켜야 했다. 기도하며 소리 죽여 흐느끼는 중에, 아이가 부모님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벽에다 내동댕이치는, 그런 환상이 보였다. 하나님이 선물로 그 아이를 주셨는데, 자신은 그 선물이 싫다고 칭얼대는 아이였다. 무너지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날 이후 아이를 바라보는 사모님도 행복해진 모습이었다.


목사님 부부의 삶이 보여주듯, 행복은 닥쳐온 현실 앞에서 우리가 취하는 '선택'에 놓여 있다. 삶은 거대한 도화지와 같다. 실시간 그려지는 배경 그림, 즉 현실 자체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그림 위에 어떤 색을 입힐지,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캔버스 위에 어둡고 차가운 색을 칠할 수도 있고, 밝고 따뜻한 색을 입힐 수도 있다. 현실은 같아도 해석이라는 채색을 통해 그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우리는 '재수 없이 팔이 부러졌네'라는 어두운 색 대신, '다른 쪽 팔은 멀쩡하니 일상생활은 할 수 있겠다'라는 밝은 색을 선택할 수 있다. 사건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이 고통을 ‘불행’으로 내버려 둘지, 혹은 ‘극복할 수 있는 시련’으로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우리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행복을 부르는 태도는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순간의 만족을 발견하기로 선택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모든 것이 완벽한 삶'은 어쩌면 행복을 향한 가장 큰 함정일지 모른다. 외부 조건이 완벽해야만 행복하다는 생각은 결국 우리를 영원히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을 부르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다. 이 작은 태도의 선택이 쌓여, 인생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험난한 물살을 안전하게 넘을 수 있는 단단한 행복의 다리를 놓게 될 것이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란,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행복을 선택하는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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