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0번 짜증 나도 괜찮아

짜증 나는 청소년의 하루를 공감해 주자.

by 노현호

하루에 1,000번 이상 짜증 난다는 말을 하는 청소년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짜증 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탐탁하지 않아서 역정이 나다.'이다. 그렇다면 역정은 무엇일까? 역정은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여서 내는 성.'이란 뜻이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풀이를 해보자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서 몹시 못마땅한 감정상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중고등학교 시절엔 탐탁지 않는 일이 많았다. 집안 사정부터 시작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키, 외모,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갖고 싶은 것들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 그날의 날씨 등등 오만가지가 다 짜증 나게 하는 것들이었다. 마치 마음속에선 항상 태풍이 부는 것처럼 천둥과 번개도 수시로 치고 돌풍과 폭우도 자주 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춘기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나 보다.


성인이 된 후 청소년 아이들을 바라보면 짜증 나는 일들 투성이인 그 아이들의 생활이 짠해 보일 때가 많았다. 나 역시도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딱히 조언해 주기도 만만치 않다. 우선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중고등부 교감을 할 때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우선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그들과 내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치 보기 싫은 것을 볼 때의 눈빛으로 날 쳐다보면 멀쩡하던 내 기분도 꿀꿀해 지곤 했다.


청소년시기 아이들이 마음음 왜 이렇게 요동을 칠까?? 자아의 확장, 생각의 확장 그리고 경험의 확장에서 오는 혼란이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아기와 초등학교 시절의 삶의 반경은 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이 전부였다. 관심과 흥미를 끄는 것들은 장난감, 만화, 소꿉친구 등 중고등학교 시기와 비교해 보면 무척이나 적다. 반면 청소년 시기가 되면 아이돌 그룹부터 시작해서 여러 브랜드의 옷과 신발, 이전엔 신경 쓰지 않았던 친구들의 집안과 부모님의 직업, 가정형편 수준, 입고 있는 옷의 차이, 특히 외보의 차이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신체발육이 급변하는 시기다 보니 신체의 성장이 가져오는 당혹스러움도 아이들의 혼란에 한몫하는 것 같다. 키의 크고 작음부터 신체 발달의 차이, 얼굴의 이쁘고 못남, 목소리의 차이 등등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는 가지의 수가 무척 많아진다. 이 시기에 키가 크고 작음은 아이들 사이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키가 작은 어느 친구는 작은 키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 부모님의 작은 키를 원망하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런 여러 가지 외적 요인들과 함께 마음속 혼란이 극에 달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널뛰는 기분, 조증과 우울증을 왔다 갔다 하는 심리적 상태는 아이들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어른들은 학창 시절이 가장 좋을 때라고 말하지만 아직 어른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겐 마치 외계언어처럼만 들릴 뿐이다. 어른들은 공감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을 공감할 수 없다. 우린 그걸 인정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공감한 것과 같이 아이들도 어른들을 공감해 주길 바란다는 건 큰 욕심이자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청소년 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님은 많이 공감할 것 같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다른 부모님들의 말을. 함께 근무했던 동료 중에 중고등학교 시절의 자신의 딸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정말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는 그녀의 말을 100프로 다 공감하진 못했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하루 종일 '짜증'이라는 표현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까? 아마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짜증 낸 부모님께 종종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기에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표현하는 것도 짜증 나는 일이기 때문에 피하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두고 있는 부모님이라면 '넌 왜 그 모양이니!', '내가 낳았지만 내 자식이 아닌 것 같다' 라든지의 표현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공감해 주는 걸 추천한다. 아이들은 수시로 불안해한다. 나보다 키가 큰 친구를 볼 때, 우리 집 보다 잘 사는 친구를 볼 때, 나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를 볼 때, 앞이 그려지지 않는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마주할 때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마주할 땐 꼭 '괜찮아'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럼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다.


매일을 짜증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기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 노력으로 대화 한마디 더 하고 좋은 추억 하나 더 만드는 게 더 도움 되리라. 성당 중고등부 교감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과 '함께 놀아주기'이다. 결코 좁힐 수 없었던 마음의 거리도 어느새 가까워지고 있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 말자. 우리도 학창 시절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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