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맛있는 영화를 찾아 떠나는 식도락 씨네마입니다.
오늘은 색다른 공포를 선사하는 조던 필 감독의 영화들을 함께 음미해 보실까요?
닫는 사슴을 보고 얻은 토끼를 잃는다
첫 번째 작품은 <겟아웃>입니다.
<겟아웃>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만연한 차별과 억압 속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흥미롭게 조명합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후반부 장면에 수미상관 구조로 삽입된 ‘Run Rabbit Run’은 1939년에 노엘 게이 와 랄프 버틀러가 작곡한 노래로, 토끼고기로 파이를 만드는 ‘토끼파이데이’에 토끼를 쫓으며 ‘도망쳐라, 토끼야!’라고 외치는 내용입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의 백인과 흑인의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오프닝에서는 한 백인이 지나가던 흑인을 납치해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에 태우는 장면에 삽입되어 흑인에 대한 백인의 권위의식을 보여주는 반면, 후반부에서는 흑인 주인공 크리스가 백인 여자친구 로즈의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장면과 함께 흑인과 백인의 주객전도를 보여줍니다.
크리스는 로즈의 어머니 미시에게 의도치 않게 최면 치료를 받으며 마치 암흑 속에서 TV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되는데요.
이 장면은 계몽을 명목으로 흑인의 정체성을 교란시키려는 백인 중심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최면에 걸린 크리스가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장면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 즉 흑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해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한편 파티에 초대된 백인들이 크리스를 칭찬하는 명목으로 흑인의 육체적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백인들과 달리 크리스만 유일하게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흑인을 완전히 포용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빨간색 옷은 흑인의 인권 향상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 즉 백인의 두려움과 욕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슴은 죽어 마땅하다.
반항적인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백인들 사이에서 ‘검은 사슴(Black Buck)’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참고하면, 로즈의 아버지 딘이 “사슴은 죽어 마땅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저항하는 흑인은 제거해야 한다’는 그의 백인우월주의적 인식을 보여줍니다.
한편 사슴은 일반적으로 재탄생, 장수, 성욕, 빛과 태양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딘이 “로드킬 당한 사슴을 보면 이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영화 속 사슴은 재탄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They think like us.
두 번째 작품은 <어스>입니다.
영화의 제목 ‘어스(Us)’는 인간과 도플갱어들의 관계, 즉 ‘우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도플갱어들의 습격이 지구의 재앙을 초래할 뻔 했다는 점에서 ‘Us’와 발음이 유사한 ‘Earth(지구)’, 도플갱어들이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U.S.)’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는 시기에 활동했던 구약성경의 대예언자 가운데 한 명인데요. 예레미야 11장은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예레미야 11장 11절은 ‘피할 수 없는’ 도플갱어의 침입으로 인해 재앙이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때 이들이 입고 있는 빨간색 의상은 정지, 금지, 위험, 경고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도플갱어가 위험하고 금지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도플갱어들이 손을 잡고 일렬로 서 있는 모습 또한 ‘11:11’처럼 보인다는 점인데요. 이는 인간과 도플갱어의 대칭성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도플갱어들이 공격 도구로 사용하는 가위 또한 같은 모양의 두 개의 날이 엇갈려 있는 형태로,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11:11’과 유사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가위는 레드와의 관계를 ‘절단’하고자 하는 애들레이드의 의지를 투영하는 매개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애들레이드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던 커플 중 한 명이 상대가 연속으로 가위를 내며 이기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을 목격하는데, 이는 애들레이드와 도플갱어들이 가위를 인간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복선입니다.
너희는 나무를 보고 파란 하늘을 보며 햇빛을 보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잖아.
영화의 모티브가 된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Hands Across America)’ 캠페인은 실제로 1986년 5월 25일 미국 전역에서 기아와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진행되었는데요.
당시 약 650만 명의 미국인이 참여하여 15분 동안 손을 맞잡고 미국 내 48개 주를 가로지르는 긴 인간 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 속 도플갱어들은 미국 사회의 취약계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차별과 부조리에 반대하며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구조적 측면의 근원 파악 및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모순점을 짚어낸 것이지요.
조던 필 감독은 “우리를 죽이고 직업을 빼앗을 것만 같은 미스터리한 침입자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투표한 이들 이든, 서로를 두려워하는 시대에 서있다. 서로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괴물은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악은 우리일 수 있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요.
이러한 부분을 참고했을 때, <어스>는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우리’라는 삐뚤어진 소속감, 즉 집단주의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플갱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로운 인간세계를 습격하여 혼란에 빠뜨린 불청객처럼 묘사되지만, 애들레이드 또한 복제인간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은 타자를 배척하는 ‘우리’라는 울타리가 가진 함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내가 더러운 걸 네게 던져 날 능욕하여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마지막 작품은 <놉>입니다.
<놉>은 침팬지 고디를 주인공으로 한 티비쇼 ‘1998년 고디가 왔다 시즌 2: 생일 파티’ 에피소드의 음성과 함께 시작됩니다.
고디에게 건넨 선물상자가 열리며 풍선이 터지는 순간, 고디는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를 표출하며 순식간에 촬영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데요.
피로 물든 세트 한가운데 서 있는 고디의 모습은 착취와 통제의 시선 아래 억압된 본능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주인공 오티스의 아버지가 말 ‘럭키’에 대해 “쟤는 영역적인 동물이다. 어떤 동물들은 길들이기에 부적합하다”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외계생명체를 자신의 쇼에 활용하려던 쥬프로 인해 고디의 참사와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한편 쥬프는 서프라이즈 쇼에서 관객에게 외계 생명체의 정체를 ‘더 뷰어’라고 소개하는데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나훔서가 니느웨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뷰어는 영화를 소비하고 평가하며 ‘심판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청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쥬프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외계생명체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은 영화에 대한 시청자의 ‘심판’으로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희생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외계생명체의 모습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 또한 시청자의 취향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계생명체가 접근했을 때 모든 전자기기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다는 설정은 앞서 에메랄드가 촬영장에서 전화기를 꺼달라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집니다.
이는 외계생명체, 즉 시청자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의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영화촬영 현장에 대한 메타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감독은 우리가 이름을 통해 어떤 존재를 인식하고, 또 기억하며 존재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 주목했는데요.
예컨대, 오티스의 목장에서 키우던 말들이나 촬영장에서 학대받은 침팬지, 그리고 외계생명체 등 단순한 피사체에 불과했던 존재들의 이름(GHOST, CLOVER, GORDY, LUCKY, JEAN JACKET)을 챕터명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재가치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가장 먼저 영상으로 기록되며 영화의 시초가 되었던 ‘말 탄 흑인 남자’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듯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소비되기만 한 존재들은 역사 속에서 쉽게 잊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이러한 역사적 망각 속에서 되풀이되는 착취 문제를 조명하며, 기억되는 존재와 잊혀지는 존재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듯 조던 필 감독은 차별과 착취를 묵인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든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어쩌면 조던 필의 영화에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감은 단순한 장르적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겟아웃>: 아침엔 ‘금’ 저녁엔 ‘독’이 되는 사과의 이중성(4/5점)
<어스>: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풍기는 두리안(4/5점)
<놉>: 자연방목 닭고기로 만든 치킨너겟(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