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 19세기 서양과 19세기 조선은 기술의 발전이라는 기준에서 너무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우열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문명의 기준만으로 두 문화권을 비교하고, 기술이 뒤떨어졌다고 상대국을 함부로 할 수 있겠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각 나라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면서 상대국이 어떻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할 기회를 고려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지금 당장의 이익 때문에 불의한 무력을 사용한다면 이는 역사적으로 기록될 것이며 더 오랜 기간 두 나라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일본이 탐욕을 못 이겨 우리를 식민 지배한 기간은 35년이지만 그 이후 일본에 대한 반감은 이미 그 두 배의 기간을 넘겼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도 혹시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 자체의 가치에 초점 맞추기보다는 경제력·지위·학력·인맥 등의 특정 기준을 근거로 사람을 평가하고 함부로 대했다면 한 번 정도는 반성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 오경석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자 넘을 수 없었던 ‘벽’은 신분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여러분에게도 여러분 나름대로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 문제일 수도 있고, 학력일 수도 있고, 직장 내 지위나 신체적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오경석의 상황처럼 현실의 ‘벽’은 청년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청년의 마지막 시절까지 좌절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 꿈을 포기하고 세상에 순응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불리한 조건 속에서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도전하는 무모한 자세가 ‘청년다움’ 본연의 태도이고, 그런 행위가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현실의 장애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과 마주하는 용기 있는 존재가 바로 청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 ‘변화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그 고민한 방안을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그 제안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추진하는 일에 끝까지 참여하고, 참여한 일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고, 그 평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는 변화를 포기하게 만드는 비난이 도사리고 있고, 경제적 손해나 사회적 지위 박탈이라는 위험 부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에 책임지는 일’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양반 기득권층은 변화에 책임지기 싫어했고, 쇄국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외면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속한 조직 안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관찰됩니다.
하지만 역사가 발전하는 것은 오경석처럼 대가 없이 변화에 책임지는 사람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며, 현재도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만약 여러분 자신이라면 ‘변화의 과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 아무리 독보적인 역량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혼자보다는 ‘함께’ 일할 때 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익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여러분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동반자는 갑신정변의 위험 속에서 가족을 돌본 유홍기처럼 가장 위험할 때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도전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런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협력자를 얻기 위해서는 청년 오경석과 같은 성품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지금 만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청년 오경석은 30대 후반에 자신보다 신분과 지위가 월등히 높은 60대 초반의 박규수를 만났습니다.
격동의 시대에 도전하는 청년이라면 자신의 성품을 바탕으로 도전에 함께 할 수 있는 조력자를 꼭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우리는 성공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성공의 끝은 과연 어디이고,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깝지 않고 괴롭지만 견딜 만도 합니다. 그런데 선의를 갖고 공동체를 위해 베푼 희생을 우리는 언제까지 견뎌 낼 수 있을까요? 그것도 자신의 시간뿐 아니라 돈을 희생한다면 말입니다.
청년 오경석은 20년 가까이 청년의 시절 전부를 견뎌냈고, 청년의 시절 마지막에도 자신의 바람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나를 위해 하는 일보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은 훨씬 고되고 지칩니다. 그러니 ‘포기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단단한 각오를 하고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이왕 시작한 거 20년은 견뎌 냅시다! 그렇게 견뎌 낸 20년이라면 그 이후 20년도 거뜬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를 함께 바꿔나갑시다.
○ 나를 인정해준 사람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중인인 오경석을 최고 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이 곁에 두고 인정해 준 것은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닙니다.
하지만 청년 오경석은 그 지위를 자신의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청년 오경석은 흥선대원군을 통해 개화 정책을 시작하기 희망했고, 끊임없이 흥선대원군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외면당합니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당시에도 전쟁을 강력히 주장한 흥선대원군은 오경석의 개항 의견에 격노하여 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됩니다.
의견이 다를 때 가까운 친구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이가 열 살 넘게 많은데다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고, 그동안 나를 인정하여 중요한 일마다 나를 우선으로 파견하면서 나에게 전적인 신임을 보인 사람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개혁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런 어려운 말을 직접 내 입으로 해야 할 때가 옵니다. 청년 오경석이 겪은 상황과 같은 상황이 닥칠 때 대의를 위한 확고한 신념으로 ‘아닙니다!’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응원합니다.
○ 청년 오경석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들 지배층과는 달리 예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철저히 훈련받은 그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에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폄하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일에서는 여러분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속한 분야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알고 있는 것도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청년 여러분의 냉철한 분석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한 직장 상사를 만날 때 여러분은 깊은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자신의 분야를 개선할 적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청년 오경석이 본을 보인 대로 몇 번이고 거절당하더라도 공동체를 구하는 도전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세상에 도전할 적임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청년 여러분 자신입니다.
○ 청년 오경석뿐 아니라 앞으로 만날 8명의 청년의 삶을 보면 공통으로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좀 거칠게 표현해서 ‘왜 사서 고생할까?’라는 의문입니다.
과거에 합격한 후 전문성을 인정받아 통역관 최고의 지위를 누렸고, 13차례라는 중국 방문으로 무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청년 오경석은 당시 지배층의 의견과 대립하면서까지 도전을 했던 걸까요? 설령 정부가 개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청년 오경석이 얻는 이익이 더 있었을까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 사람들은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잘 사는 세상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남들이 웃을 수 있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글에서 다룬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이런 좋은 사람들의 성품입니다.
사실 ‘왜 사서 고생할까?’라는 질문만큼 어리석고 이기적인 물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여러분이 잘되는 것, 공동체가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생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일은 반드시 사서 고생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청년 오경석은 그것이 옳다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신념으로 확신한 후 행동했습니다.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들처럼 ‘왜 사서 고생할까?’라는 낯 뜨거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언제든지 고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또 다른 청년 오경석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