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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08. 2023

조계종 폭력의 역사 -자승(경식이)파의 시작 (상)

친일파 척결을 하지 않아서 망가진 것은 속세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친일파 척결을 하지 않아서 망가진 것은 속세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에 본영상이나 사건 이외의 스님들께서는 관여되지 않은 많은 스님들이 계심을 이해하시고, 일부 돈 문제로 벌어지는 폭력사태는 돈 때문에 발생한 조계종 상위층의 권력타툼으로만 이해 바란다고 진우스님게서 말씀하셨습니다.


본 동영상 이전의 상황

일제강점기시대에 조선총독부는 승려들이 범속화에 젖음으로써 그들이 민족의식 등 저항정신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승려들에게 대처의 경향을 권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시대에는 대처승 쪽이 불교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 이승만정권에서 이승만이 비구의 손을 들어줬으나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 친일잔재 처리는 안 하고, 불교계는 비구니 편을 들어줬으나 결국 친일 척결은 속세든 불계계든 다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비구 : 속세를 떠나 불교 입문한 스님 

❖대처 : 결혼, 육식, 음주 등 속세생활을 하는 중 


조계종 폭력의 역사 -자승파의 시작 (상)

1970년대 비구-대처 싸움에서 장악한 사찰운영권을 둘러싼 종정과 총무원장의 다툼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종정과 총무원장의 다툼이 종무원장과 종회의장의 권력다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983년 8월 6일 신흥사 승려 살인사건 - 신흥사 주지발령 관련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고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강원도 신흥사와 낙산사,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등에 있던 이권싸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설악산 신흥사-낙산사(신흥사말사), 경주 불국사-석굴암 / 신흥사 주지가 큰 이권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총무원장(황진경스님)에 주지발령권이 있었는데, 신흥사에 발령된 스님(혜법스님)이 신흥사 거주하던 스님들에게 칼침을 맞아 스님 한분이 죽음, 범인들인 기존에 신흥사 거주스님들은 종회의장(서의현)과 연관이 있었던 듯하다고 합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진경스님 사퇴하고 비상종단운영회의 구성되었고, 속초시가 2년간 운영권관리 후 1986년 서의현 아래 있던 서정대스님이 신흥사 주지로 발령, 서정대는 자승(경식이)의 은사라고 합니다. 1986년 6월 서의현이 종회의장에서 총무원장이 됩니다. 서정대의 상좌(제자)인 자승(경식이)이 총무원 교무국장을 거처 규정국장에 발령됩니다. 자승은 서의현의 폭력동원에 어깨로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의현 -> 서정대 -> 자승(경식이)으로 악의 계통이 이어졌습니다. 후에 서정대는 나중에 총무원장을 했습니다.


1988년 봉은사 폭력 사건 당시 총무원장 서의현이 주지를 자기편으로 계속 발령하였다고 합니다. 전국구 조폭 300명 조폭동원(대구, 전남 S파)을 신도로 위장하여 중앙승가대생 150명과 함께 성문이란 스님이 새벽에 기습하여 봉은사를 장악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동원된 조폭(무송 등)들이 다수 승려로 출가하여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폭력사태의 주범들이 조계종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1993년 종상스님 불국사, 분황사 폭력사태로 지명수배되어 있었고, 연주암주 지였는데, 1994년도 서의현이 연주암(용주사말사) 안양 석수동 삼막사주지 이경식(법명 자승)을 주지로 임명하고 기존 주지 측을 강제로 몰아내고자 폭력을 행사하여 주지로 사찰을 인수한 사건이 있었으며,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이경식(법명 자승)이 주지로 있다고 합니다.


1994년 종단개혁 하면서 서의현을 몰아냈을 때 도오(서의현 편)와 종상이 다시 등장합니다. 불국사 주지 종원(신용카드 사용), 규정부장 보일(숙박비), 분황사전 주지 도오(결제) -> 폭력배 동원(영등포 목포, 마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좀 복잡해지는데, 결국은 폭력배와 같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과 야합과 불법이 난무하기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의현, 서이현 상좌(보일), 서종대, 서종대 상좌(자승-경식이)와 적대세력인 <->종 상의 지원을 받아 개혁세력이 대결하였는데, 나중에 결국은 서이현 편에 있던 서정대(스님)가 총무원장이 되고, 자승(경식이)이 종회사무처장이 됩니다. 결국 개혁이란 이름하에 서이현만 물러나고 종상과 서정대, 그리고 자승(경식이)이 야합을 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1992년 보일이 금품을 종로경찰서에 뿌려 중들과 권력기관과의 유착 상황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자승처사 귀가방송 : 조계종 폭력의 역사 -자승파의 시작 (상)

https://www.youtube.com/watch?v=m0rkSOdQs3E


●윤석열 탄핵 100만 범국민 선언: 

http://bit.ly/yoo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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