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즈음부터 였다.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울렁거렸다. 엄마는 “임신한 거 아니냐, 입덧이랑 똑같네”라며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지만, 차라리 그게 맞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지하철만 타면 속이 미묘하게 뒤집혀 바닥에 주저앉는 날이 잦아졌다. 출근하기가 두려웠다.
지속되는 증상에 병원을 찾아가 초음파를 찍고, 위내시경도 했다. 점심시간에 서둘러 비수면으로 진행했는데, 내시경이 목구멍을 스칠 때마다 ‘차라리 수면으로 할 걸…’ 후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힘들게 검사한 결과는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스트레스 관리라는 교과서적인 처방을 받았다.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 카베진도 매일 챙겨먹었지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속은 여전히 거친 바다 같았다.
‘다들 위염쯤은 달고 산다지만,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혹시 위암이면 어떡하지.’
불안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작은 병원, 큰 병원 가리지 않고 여섯 군데쯤 돌았다. 위내시경도 다시 했고(물론 수면으로 했다), 헬리코박터균 검사도 했다. 결과는 늘 같았다. 그런데도 증상은 더 심해져만 갔다.
무더위가 시작될 즈음, 남편과 여수로 여행을 갔다. 풀빌라에서 수영하고, 향토 음식을 먹으며 한동안 회사 생각을 잊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둘째 날 저녁, 삼겹살 한 점을 삼키자마자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욱신거리더니, 결국 그날 먹은 걸 다 토해내고 말았다. 여행 와서도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서러움이 북받쳤다.
‘이젠 무슨 방법이든 써야겠다.’
평소 한의학을 잘 믿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한의원을 찾았다. 문을 열자 한약재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감싸고, 여든쯤 되어 보이는 한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위가 잘 안 움직여서 그래. 죽을 병은 아닌데 음청 불편하지?”
짧게 한마디 하시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배와 손, 머리에 침이 놓이고, 적외선 등이 켜졌다. 30분쯤 지나자 배 속에서 ‘꾸룩꾸룩’ 소리가 나며 막혀 있던 게 내려가는 듯한 편안함이 스며왔다. ‘진짜 명의인가 봐.’ 속으로 얼마나 감탄했는지.
그런데 그날 오후,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배가 계속 따끔거렸다.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 보니, 세상에 침 두 개가 여전히 배에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서둘러 박힌 침을 뽑으며 다신 한의원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덟 달이 지난 지금, 불편함은 나와 함께 사는 집안 식구처럼 자리를 잡았다. 한 번에 먹는 양을 줄이고, 최대한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불편함 속에서 하루를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다. 건강은 늘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밥 한 술 나눠 먹는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아픔은 내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평범한 순간의 가치를 더 깊게 새겨주었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갈, 밥 짓는 냄새, 그 곁에 있는 사람들. 언젠가 이 평범함이 다시 돌아올 거라 믿으며, 오늘도 천천히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