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반려식물에 벌레가 생겼다. 언젠가부터 잎 끝이 노랗게 타들어가 걱정하고 있던 와중, 흙에서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들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식물 해충 종류를 찾아보고 퇴치법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식물 하나만 아파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데,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걱정할 일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 우리 부부는 아이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딩크족을 자처한 것도 아니고, 그저 큰 고민조차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서로가 좋아서 결혼한 것이지, 아이를 낳으려고 결혼한 건 아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자’ 정도의 대화가 전부였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출산에 대한 질문은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부부들과 모임을 가져도 주된 화제는 자녀 계획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년 넘게 남편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를 낳으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낳지 않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계산을 했다. 끊길 커리어, 변화가 생기는 몸, 사라질 여유 시간, 많아질 집안일, 무거운 경제적 부담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라디오에서 오은영 박사님의 말이 흘러나왔다.
요즘은 자녀가 ‘생산재’가 아니라 ‘소비재’ 예요. 농경 사회에서는 자녀가 곧 노동력이자 노후의 보장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끊임없이 지원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내가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를 단숨에 정리해주신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 부족함 없이 자랐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 배우고 싶다는 악기는 다 배울 수 있었고, 미술, 댄스, 발레, 수영까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었다. 영국으로 유학도 다녀왔으니, 부모님의 지원 속에서 나는 ‘소비재’였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도 모르게 강하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동시에 그만큼 내 행복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지인의 아이가 태어났다. 둥글게 부른 배 위에 손을 얹었을 때 전해지던 힘찬 발길질, 초음파 사진 속 또렷하게 뛰던 작은 심장 소리. 내가 수없이 계산하던 이유와 조건들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그때 알았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단순히 삶의 손익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현실적인 고민은 분명 존재하지만, 결국 아이는 ‘내가 선택한 또 다른 가족’이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그 특별한 존재가 찾아오는 순간, 내 삶도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게 되리라.
나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성숙한다고 믿지 않는다. 입시, 연애, 결혼처럼 인생의 큰 사건들을 통과하며 우리는 비로소 한 단계씩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결혼 준비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실감했던 것처럼.
‘임신’, ‘출산’, ‘육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과정들을 지나며, 나는 더 깊어질 것이다. 임산부에게 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지,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울 때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몸으로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되리라.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끝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로운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계산하고 주저하던 이유들은 결국 사라지고, 나는 한 아이의 부모로서, 새로운 가족을 품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