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 식탁 아래에서 밥을 먹었다

식탁 아래

by 식탁 아래

명절이면 늘 식탁이 차려지고, 그 위에는 웃음소리와 음식이,

그 아래에는 나의 손목과 한숨이 있었다.


특별히 이유 없이 차별이나 미움을 받은 적은 없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막내딸로 귀여움을 받았고, 부모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날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시가에 갈 때 마다 나는 작아졌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겪으며 인내해야 할 순간들이 많았는데 또 다른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셨다고 했다,

“내가 시집살이 했으니, 내 며느리는 절대 그렇게 안 시키겠다.”


곧,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나는 절대 라면을 먹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때, 실제로 라면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라면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이라는 것과 비슷했다.


시어머니도 자신이 겪었던 고생 때문에, 강한 부정으로 긍정을 표현하시는 게 아닐까


아기를 낳고 약해진 관절 때문에 하루종일 힘든 시기였다.

손목보호대도 내 내 아픔을 나눠가진 못했다.


명절이 겹쳐 시댁에 갔고, 혼자 서서 전을 부치고 고기를 구웠다. 기름 냄새와 피로가 온몸에 배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중, 어머니가 앞치마와 장갑을 주시며 손목을 걱정하셨다.


하지만 동시에 설거지거리를 쌓아놓고 가시고, 계속해서 가져다주었다.

대가족의 명절상, 끝도 없었다.


남편이 도와주러 오니 아기를 봐야 한다며 데려가셨다.

외로운 한 시간의 설거지, 아픈 손목을 어루만졌다.


그때 나는 다시는 시댁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명절에도 똑같았다. 이듬해에 형님이 결혼을 했고, 새 식구가 생겼다. 식탁에 자리가 부족했다.


나는 아기를데리고 식탁이 아니라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게 됐다.

식탁 아래, 거기가 내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