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첫 세배, 초라한 복주머니

봉투의 무게

by 식탁 아래

엄마는 늘 죄인이었다.
딸을 가진 게 죄인이라는 말, 그 말이 나는 너무 싫었다.


행여 딸이 시집살이로, 구박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겠지만
나는 그 때문에 딸을 낳는 게 두려웠다.


남편과 결혼할 당시, 모은 돈은 거의 비슷했다.
아니, 내가 조금 더 많았다.


나는 남편에게 차를 한 대 사주었고, 함께 모은 돈으로 전세집을 구했다.
남은 돈은 저축을 했다. 시댁과 친정의 도움은 없었다.


부모님이 시댁에 드린 예단비만 우리에게 되돌아왔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신혼을 시작했다.


눈치볼 것이 없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일을 하진 못했지만 나는 육아와 내조를 성실히 해냈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꾸 눈치를 보셨다.


결혼하고 첫 명절이 오기 전, 엄마 생신이라 부모님 댁에 갔었다.

시부모님께 드리는 명절선물이라며 선물세트를 주시기에 들고왔고, 명절에 시부모님께 전해드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거기에는 돈봉투가 있었다.

고운 봉투를 마련해 새 돈을 찾아 담아 우리 딸좀 예쁘게 봐달라는 고운 마음도 들어있었으리라.


그리고 친정에는 빈 손으로 갔다.


다음 명절은 신년이었다. 친정에서 보내주신 선물세트(또 돈봉투가 있었으리라)와 시댁에 방문했다.

아기의 첫 세배였고, 곱게 한복을 입혀 시댁에 데려갔다. 그 누구도 세뱃돈을 준비해놓지 않았다.


아기의 복주머니가 초라했다.


빈손으로 방문한 친정에서는 고운 봉투에 빳빳한 새 돈,

글을 읽지 못하는 아기에게 한 자 한자 꾹꾹 눌러담은 편지까지 받아 돌아왔다.

사위와 딸 몫의 봉투도 있었다.


그 해 추석에도, 이듬해 새해에도, 늘 시댁에선 빈손으로 돌아왔고

부모님은 늘 봉투를 챙기셨다.


부모님의 봉투가 늘어갈수록 나는 점점 봉투의 갯수를 계산했다.

돌려받지 못할지라도 부모님의 성의는 계속됐고 나는 해마다 개수를 세었다.


순수한 성의를 계산하게 한 쪽은 그쪽일지라도 나는 어쨌든 계산기를 두드렸다.


대가 없는 호의를 베푸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일지는 어느새 칠순을 앞두고 있는 부모님이 더 잘 아실테지만, 오로지 딸을 위한 마음일테지.


그 봉투는 절대적인 사랑일테지만, 그 마음만은 평생 갚아도 상환 못할 자식의 빚이리라.

그 마음을 헤아려 나는 다음 명절에도 봉투를 받아 시댁에 방문할거다.


그리고 또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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