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엌
이렇게 되니 ‘엄마만 일하는 할머니댁’에서 아기가 어떻게 느낄지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기가 크면, 언젠가 나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아기는 점점 성장할테고, 어느정도 크면 ‘할머니댁에 가면 우리엄마만 일한다’라는 자각이 생기리라.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아기가 느끼게 되거나,
아니면 늘 그렇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어느 쪽도 아이에게 좋지가 않을것이다.
내 나이 다섯살인가 여섯살인가
추석이었고, 부천에 있는 친할머니댁에 갔었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작은 주방과 큰 안방하나,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주택이었다.
노란 바닥의 뜨끈한 방. 네모난 두꺼운 TV 하나, 그 앞에 늘 가족이 모였다.바닥에 알록달록한 천으로 누빈 두껍고 포근한 요가 항상 깔려있었다.
작은 방은 막내삼촌의 차지였다.
침대 하나, 티비 하나. 늘 흰색 난닝구를 입고 있던 노총각 막내삼촌은 늘 누워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 주방에는 늘 큰엄마와 엄마가 있었다.
할머니가 함께 하시던 때도 있지만, 늘 마지막은 엄마가 남았다.
큰엄마는 전을 함께 부치셨고, 설거지도 하셨다.
하지만 늘 엄마가 제일 많이했다.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엄마는 앉지 못했다.
엄마는 혼자 전을 끝까지 부치고, 국을 뜨고, 반찬을 날랐다.
다른 식구들은 밥을 먹었다.
엄마와 큰엄마와 나와 언니는 작은 상에 따로 밥을 먹었다.
사촌오빠들은 큰 상에서 어른들과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엄마는 종일 서서 설거지를 했다.
안방의 바닥은 뜨끈했고, 주방은 발바닥이 시렸다. 공기도 차가웠다.
아직도 그 주방의 냉기를 기억한다.
엄마는 혼자 서서 땀을 흘리며 설거지를 하고 또 했다.
엄마가 흘리는 땀은 눈물같기도 했다.
아빠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은 화투를 치거나, TV를 보거나, 누워서 쉬거나 잠들었다. 언니와 나는 모든 걸 보고있었다.
밤이되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제삿상이 차려진다.
엄마의 땀이 절반이었다.
제사음식을 다 차리고 나면, 엄마는 뒤에 서계신다. 엄마의 자리는 없었다.
밥을 먹는데, 엄마가 차린 밥을 먹는데 너무도 화기애애했다.
엄마는 지쳐보였다.
참을 수 없었다.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런데 왜 우리엄마만 일해요?”
.
.
조용했다.
어른들도 아셨을테지.
아이가 아는 게 제일 무섭다.
다음 해부터는 엄마가 조금 덜 일하게 됐다.
친할머니댁에 가면 엄마는 늘 어두웠고, 외할머니댁에 가면 밝아졌다.
나는 할머니댁에 가기 싫었다.
일하는 엄마도 보기 싫고, 엄마만 일하는 게 보기 싫고, 엄마만 일시키는 가족들이 보기 싫었다.
그때부터 나는 알았다. 사랑이라는 말로도 덮이지 않는 불공평이 있다는 걸.
청소년기부터 나는 할머니댁에 가지 않게 됐다.
그리고 나에게 딸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