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게

넓고 복잡한 서울에서 너를 만나 고마웠어!

by 핑크뚱

넓고 복잡한 서울에서 너를 만나 얼마나 신나고 편리했는지 모르겠어. 그동안 고마웠어. 잘 있어.


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가로질러 놓인 철길 위 기차를 타고 몇 개의 터널과 강줄기를 지나 달리고 달려 대한민국의 수도인 이곳 서울특별시에 왔어.


내가 경험한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답게 높고 번쩍번쩍한 빌딩이 숲을 이뤘더라. 숲 속하면 당연히 뛰어놀아야 할 동물들 대신에 무수히 많은 자동차와 버스들이 얼키설키했어. 또, 누가 누가 방귀대장인지 뽐내기 하듯 부끄러움도 모르고 연신 매연을 뿜어 내는 낯설고 물선 곳에 첫 발을 내딛는 나는 태초의 벌거벗은 원시인이 되어 다른 세상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일었어. 다분히 이런 내 마음 같은 사람들이 너를 만들고 깊은 땅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땅 밑은 비만 오며 꿈틀꿈틀 밖으로 느리게 기어 나와 수분을 몸에 촉촉이 묻히고 돌아가는 길에 비가 멈춰 아스팔트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지렁이, 빵 부스러기를 긁어모으고 모아 가져가기 위해 몰려든 작고 작은 개미떼 들이나 사는 곳이야. 그런데 너는 그 깊고 깊은 땅 밑에서 절대 느리지도 작지도 않았어. 오히려 상상을 뛰어넘는 길고 긴 몸집과 삐까번쩍한 외관을 가졌더라. 그런 너를 만나기 위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오르내렸는지 모르겠어. 깊고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너를 만나기는 땅속 두더지 만나기 만큼 어려웠어.


서울의 겨울은 확실히 내가 사는 남쪽보다 추웠어. 그래서 네가 더 반가웠어. 네가 사는 땅 밑이 상당히 따뜻했거든. 거기다 네 품 안은 덥기까지 했어. 동화 해님과 바람에서 땅 위에 심술쟁이 바람 때문에 꽁꽁 싸맨 옷들이 해님의 따뜻함에 스르르 벗게 되는 것처럼 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목도리도 풀고 외투의 지퍼도 내리게 되더라.


반면 너는 성격이 굉장히 급했어. 출입문이 열리자 바로 닫는다며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급하게 만들었어. 가 보기엔 괜히 일에 지쳐 활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일부러 막 장난치는 개구쟁이 같았어. 그래서 아무거나 군과 짓궂은 너 때문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급한 성격 덕인가 말은 또 얼마나 빠르고 많은지. 아무거나 군도 네 말에 답하며 덩달아 어찌나 조잘조잘하는지 내 귀가 아플 정도였어. 그래서 좀 짜증도 났어. 그리고 넌 생각보다 대개 똑똑하더라.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거니. 똑똑하며 피곤하다던데 그 말이 맞나 봐. 너 좀 피곤했어. 잠시도 쉬지 않고 말하니 말이야. 또 말하는 중간중간 광고는 얼마나 깨알같이 하는지. 그러니 궁금해졌어. 너는 도대체 언제 쉬니? 쉬기는 하는 거야? 아픈 곳은 없어?


점점 네가 안쓰러워지고 신경이 쓰였어. 꼭 콩나물시루를 닮았어.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물 주는 걸 잊으면 절대 안 되는 콩나물시루 속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 하니깐 말이야. 그 덕에 네 속에서 사람들은 편하고 안전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맺나 봐. 정말 대단해. 보람도 많이 느낄 것 같더라. 하지만 무엇보다 너의 건강이 중요해. 너의 건강은 사람들의 안전과 같으니깐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좀 더 너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서 사랑받으며 함께 할 수 있지 않겠어.


나는 짧은 나흘의 시간 동안 네 덕에 시간을 아꼈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어.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라 많이 아쉽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어.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너의 친절과 수다가 많이 그리울 것 같아. 혹시 다음에 또 왔을 때도 잊지 않고 격하게 환영해 줬으면 해. 고마웠어. 잘 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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