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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Feb 18. 2023

지하철에게

넓고 복잡한 서울에서 너를 만나 고마웠어!

넓고 복잡한 서울에서 너를 만나 얼마나 신나고 편리했는지 모르겠어. 그동안 고마웠어. 잘 있어.


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가로질러 놓인 철길 위 기차를 타고 개의 터널과 강줄기를 지나 달리고  대한민국의 수도인 이곳 서울특별시에 왔어.


내가 경험한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답게 높고 번쩍번쩍한 빌딩이 숲을 이뤘더라.  속하면 당연히 뛰어놀아야 할 동물들 대신에 무수히 많은 자동차와 버스들이 얼키설키했어. 또, 누가 누가 방귀대장인지 뽐내기 하듯  부끄러움도 모르고 연신 매연을 뿜어 내는 낯설고 물선 곳에 첫 발을 내딛는 나는 태초의 벌거벗은 원시인이 되어 다른 세상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일었어. 다분히 이런 내 마음 같은 사람들이 너를 만들고 깊은 땅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네.


내가 지역에서 땅 밑은 비만 오며 꿈틀꿈틀 밖으로 느리게 기어 나와 수분을 몸에 촉촉이 묻히고 돌아가는 길에 비가 멈춰 아스팔트 위에서 렬하게 전사하는 지렁이, 빵 부스러기를 긁어모으고 모아 가져가기 위해 몰려든 작고 작은 개미떼 들이나 사는 곳이야. 그런데 너는 깊고 깊은 땅 밑에서 절대 느리지도 작지도 않았어. 오히려 상상을 뛰어넘는 길고 긴 몸집과 삐까번쩍한 외관을 가졌더라. 그런 너를 만나기 위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오르내렸는모르겠어. 깊고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너를 만나기는 땅속 두더지 만나기 만큼 어려웠어.


서울의 겨울은 확실히 내가 사는 남쪽보다 추웠어. 그래서 네가 더 반가웠어. 네가 사는 땅 밑이 상당히 따뜻했거든. 거기다 품 안은 덥기까지 했어. 동화 해님과 바람에서  땅 위에 심술쟁이 바람 때문에 꽁꽁 싸맨 옷들이 해님의 따뜻함에 스르르 벗게 는 것처럼 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목도리도 풀고 외투의 지퍼도 내리게 되더라. 


반면 너는 성격이 굉장히 급했어. 출입문이 열리자 바로 닫는다며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급하게 만들었어. 가 보기엔 괜히 일에 지쳐 활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일부러 막 장난치는 개구쟁이 같았어. 그래서 아무거나 군과 짓궂은 너 때문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급한 성격 덕인가 말은 또 얼마나 빠르고 많은지. 아무거나 군도 네 말에 답하덩달아 어찌나 조잘조잘하는지 내 귀가 아플 정도였어. 그래서 좀 짜증도 났어. 그리고 생각보다 대개 똑똑하더라.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거니. 똑똑하며 피곤하다던데 그 말이 맞나 봐. 너 좀 피곤했어. 잠시도 쉬지  않고 말하니 말이야.  말하는 중간중간 광고는 얼마나 깨알같이 하는지. 그러니 궁금해졌어. 너는 도대체 언제 쉬니? 쉬기는 하는 거야? 아픈 곳은 없어?


점점 네가 안쓰러워지고 신경이 쓰였어.  콩나물시루를 닮았어.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물 주는 걸 잊으면 절대 안 되는 콩나물시루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 하니깐 말이야. 그 덕에  네 속에서 사람들은 편하고 안전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맺나 봐. 정말 대단해. 보람도 많이 느낄 것 같더라. 하지만 무엇보다 너의 건강이 중요해. 너의 건강은 사람들의 안전과 같으니깐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좀 더 너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오래도록 사람들 에서 사랑받으며 함께 할 수 있지 않겠어.


나는 짧은 나흘의 시간 동안 네 덕에 시간을 아꼈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어.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라 많이 아쉽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어.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너의 친절과 수다가 많이 그리울 것 같아. 혹시 다음에 왔을 때도 잊지 않고 격하게 환영해 줬으면 해. 고마웠어. 잘 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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