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바람을 밀어내고 따뜻하고 노곤노곤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봄은 새로운 생명이 뾰족뾰족 솟아나고 피어나는 역동의 계절입니다. 그 이면에 콧속을 간질간질하는 알레르기와 나른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춘곤증도 함께하는 힘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후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상태가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미세한 구멍이 난 풍선 같습니다. 아무리 바람을 불어넣어도 채워지지 않거나 부풀려도 금방 푹 꺼져 버리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거든요.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같습니다.
저는 주부입니다. 푹 꺼지는 제 마음을 온전히 그냥 둘 수 없다는 말입니다. 채워 넣어도 넣어도 늘 텅텅 빈 통장 잔액 같은 냉장고와 닦아내도 쓸어내도 먼지와 개수대의 설거지거리는 무한정 쌓이는 게 현실입니다. 나태함이란 제가 불러들이지 않았는데도 어찌 주기적으로 잊지도 않고 꼬박꼬박 찾아오는지 신기합니다. 이런 제 상황에도 기특하게 지구 환경에는 제법 노력을 기울입니다. 실천도 하고요. 지속 가능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끊임없는 관심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나태해진 시기에는 오늘만! 안돼! 가 매일매일 무섭도록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겁니다.
어린 시절 집 앞 개울은 동네 사람들의 빨래터였고, 설거지하는 개수대였습니다. 그때 개울에서 이루어진 생활에서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히 자연정화가 된다는 확신에 찬 행동들이었을 겁니다. 그때의 무지막지했던 행동이 지금의 나태함에 채찍질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생필품이 떨어지면 조바심이 나지 않나요? 저는 그렇습니다. 무지 조바심이 납니다. 하지만 한동안 이 조바심을 무기력이 누르고 있어 좀처럼 기를 못 펴고 있다 드디어 몇 개 남지 않은 주방비누에 정신이 바짝 조여왔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주방세재로 액체세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벌써 사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워낙에 갑갑한 걸 싫어해 고무장갑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손에 습진을 달고 살았습니다. 은근 예민한 피부를 가졌죠. 처음은 전적으로 제 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다면 지금은 독한 세제가 흘러 흘러 하수구와 강을 거쳐 큰 바다로 나가 이게 다시 우리들 입속으로 되돌아와 먹고 즐긴다는 이야기에 무서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세제, 주방세제, 비누 등에 사용되는 계면활성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죠. 좀 더 깨끗하고 탁월한 세정력을 위해 사용하는 계면활성제의 대부분이 석유에서 추출한 합성 계면활성제라 더러움을 제거하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피부의 표피까지 벗겨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서운 성분이 함유된 주방세제는 1년 동안 우리도 모르게 먹는 양이 소주 2~3잔 정도가 된다고 하니 더 끔찍했습니다. 설거지 후 그릇에 남아 있는 잔류세제가 그렇게나 많다니 말입니다.
한때 유튜브 세상을 유랑하다 알게 된 정보인데요. 이게 은근 간단하면서도 세정력은 엄청 좋아 쭈욱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찬밥주방비누' 되시겠습니다. 우리 인간이란 족속들이 아무리 좋아도 번거롭고 귀찮으면 잘 안 받아들이잖아요. 저 역시 그런 분류에 속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제가 지속적으로 길게 사용하고 있다는 건 삶에 큰 무리가 없다는 말이 되겠죠.
우리 주위에 주방비누 만들 재료들은 항상 풍족하게 있습니다. 식구수대로 밥을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은 입맛이 없어서, 어느 날은 반찬이 개떡 같아서 이래저래 남긴 밥들이 제법 모여 있죠. 그럼 됐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될 운명의 찬밥은 얼룩덜룩한 그릇에 반짝반짝함을 선물해 줄 겁니다. 밥 속에 풍족하게 있는 전분이 은근 매력덩어리거든요. 그릇에 덕지덕지 묻은 오염물질, 미끄덩한 기름기, 빈 속을 휘젓는 역한 냄새까지 모두 한방에 제거하는 탁월함을 가졌습니다. 다시 보이죠.
찬밥비누 만들기 준비물은 콩기름 1kg, 이때 폐식용유도 무방합니다. 저는 주위에서 주방비누 만든다고 모아주신 폐식용유를 이용해 주로 만듭니다. 사용하지 않은 기름과 차이점이라면 때깔의 차이죠. 맑은 아이보리색이냐 탁한 옅은 갈색이냐 어디쯤에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올리브유나 카놀라유는 비누화가 늦고 무르게 만드는 기름이므로 사용하지 마세요.)
찬밥 100g, 그리고 비누화수 420g 정도가 필요합니다. 뜬금없는 비누화수가 생소하시죠. 비누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가성소다 또는 양잿물이라도 하고 유식한 말로 수산화나트륨이라 합니다. 가성소다는 물과 혼합되면 열이 발생하는데 이때 수증기를 흡입하면 안 됩니다. 독성이 있거든요. 이런 가성소다로 비누 만들 때 불안함과 불편함을 제거한 대체 물질이 비누화수입니다. 비누 만들기가 훨씬 편해졌죠.
얼추 재료들이 준비되었다면 몇 년째 싱크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깨비방망이와 매일매일 마시는 우유의 빈 갑만 더 있으면 됩니다. 콩기름과 비누화수를 분량만큼 그릇에 담아 도깨비방망이로 위이이잉 휘저어 섞으면 액체가 신기하게도 걸쭉하게 고체화가 시작됩니다. 이때다 싶게 찬밥을 넣어 다시 위이이잉 휘저어 섞으면 완성됩니다. 참, 쉬이이입죠! 마지막으로 빈 우유갑에 넣어 집에 굴러다니는 스티로폼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 24시간 저온숙성을 합니다. 이게 그 유명한 저온숙성(cp) 비누 되시겠습니다. 저온숙성을 거치면 비누는 단단한 형태가 됩니다. 그럼 우유갑에서 꺼내 사용하지 않는 과도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줍니다. 그리고 선선한 실온에서 한 번 더 3~4주 숙성을 시키면 진짜 끝입니다. 그럼 신문지로 하나하나 포장해 보관용기에 담아서 사용하면 한동안 주방비누 걱정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자연을 위해 조금의 번거로움은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 정도 되겠네요. 앞으로는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사용할 수 있는 지구일지 모릅니다. 우리 함께 꾸준히 노력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