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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10. 2023

텃밭과 작별하기

카눈이 조용히 지나기길

여러분들은 안녕하신가요. 제가 사는 지역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태풍 카눈의 위력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거제 부근에 상륙해 내륙을 통과하면서 강도가 한 단계 내려갔다는 소식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카눈의 진로가 완벽히 우리나라를 벗어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되겠습니다. 모두들 별 탈 없길 바랍니다.


한동안 텃밭에서 자라고 있던 몇 종류의 채소로 행복한 날을 보냈습니다. 상추는 매일 밥상에 올라 쌈을 즐기는 시간을 줬습니다. 매운맛을 즐기는 간단 씨를 위해 심은 청량초는 병충해 없이 싱싱하게 잘 자라 간단 씨의 일상해 적당한 매콤함으로 활력을 줬습니다.


따도 따도 다시 빨갛게 익어있는 토마토는 저의 채소. 과일식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여기다 주변 지인에게 나눔도 하는 훈훈함까지 완벽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도 따도 다시 따야 해 여름내 냉장고 야채칸을 늘 세 놓고 있었고, 단맛은 거의 없고 시큼한 맛만 강해 어린아이 입에는 충분히 자극적이라 싫었습니다. 이번 텃밭에서 키운 대추토마토는 그 시절 제가 알고 있던 토마토 맛에 대한 오해를 풀기에 충분하게 달았고 적당하게 새콤해 맛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뾰족뾰족한 잔가시가 딸 때마다 따끔했던 가시오이는 아쉽게도 몇 번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식물권에 대한 저의 무지가 공장식 축산처럼 충분한 거리 두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은 오이 묘목은 자라기 충분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이는 그런 저의 허물도 용서했는지 몇 번의 수확으로 맛본 것이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뛰어난 맛이었습니다.


긴 장마와 뙤약볕은 노지에서 자라는 작물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현관문만 열어도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 막힐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요. 저는 창문을 꼭꼭 닫아걸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숨어 더위를 피했습니다. 문을 나서 고개만 살짝 돌리면 목이 타 말라가는 작물을 눈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기다 여름휴가를 위해 며칠 집을 비웠고 그 사이 안타깝게도 애타게 물을 원했던 작물은 바삭 말라죽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바스락 말라 가는 동안에도 달콤하고 매콤한 열매를 선물로 주고 갔습니다. 주인의 관심이 조금만 있었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충분히 수확의 기쁨을 선물했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의 텃밭 생활은 생각보다 이른 작별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밤 사이 굵은 빗줄기에 맥없이 쓰러진 대파도 모두 뽑았습니다. 깨끗하게 씻어 음식 고명으로 넣어 먹기 좋게 썰어 냉동실에, 자주 먹는 청량초는 물기를 제거해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실에 넣었습니다. 토마토는 깨끗하게 씻어 적당량씩 나눠 담았습니다.


저는 내년 텃밭에게 약속합니다. 올해보다 확실히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재배하겠다고요. 두어 달 텃밭 덕에 신선하고 맛 좋은 선물을 듬뿍 받아 감사한 날이 넘쳤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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