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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16. 2023

흥! 칫! 뿡! 칫! 뿡!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제 채소. 과일식...

초행길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식당 메인에 걸린 잘 차려진 된장찌개 상은 없던 입맛도 살릴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숙소에서 아침을 가볍게 해결했고 시원한 실내였지만 종종거리며 몇 시간을 돌아다녔더니 금방 뱃속에서는 노크가 시작됐습니다. 서울에서 삼 일간 무더위와 함께 걸었던 여독이 쌓이고 쌓여 더 빠르게 지치고 더 빠르게 허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색해 찾은 식당의 내부로 들어섰을 때 잘못됐다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한 상을 팔 것 같지 않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였거든요. 일단 들어갔으니 소심한 저와 간단 씨는 되돌아 나올 용기는 없어 방으로 안내받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메뉴에는 없었습니다. 이곳은 코스요리가 제공되는 한정식 전문 식당이었습니다. 메뉴판에 제시된 가격에 고민했으나 모두들 더 이상 걷는 건 무리라며 식사를 결정했습니다. 우선 메뉴 중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골랐습니다. 얼마 후 제가 좋아하는 고급스러운 도자기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이 상을 가득 채우며 차려졌습니다.  

    

가장 앞서 지친 우리들의 입맛을 살아나게 할 샛노란 단호박죽이 놓였습니다. 그 뒤로 신선한 샐러드와 버섯, 잎채소의 품에 폭 감싸인 두부 강정, 빨간 떡볶이에 익숙한 아무거나 군을 놀라게 한 간장에 한껏 멋 부린 검은 궁중 떡볶이. 여기에 꼬들꼬들 씹는 맛과 새콤달콤한 해파리무침, 구수하고 쫀득한 메밀 고기전병에 떡갈비까지 다채로운 한 상이 잘 차려졌습니다.


솔직히 가격은 뒤 문제였습니다.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음식 앞에 심드렁한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이 문제였습니다. 그들 기준에 입맛을 돋우는 요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요란한 음식을 싫어합니다. 이것저것 가짓수를 늘려 차려진 밥상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 가지 음식 즉,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단일 메뉴를 선호합니다. 지친 몸을 점심으로 짭조름한 된장찌개에 기대 쉬고 싶었던 간단 씨였습니다. 그러니 군침 돌게 차려진 산해진미에는 별 관심 없었고 된장찌개가 언제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은근히 저를 타박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여행 나흘째가 되는 동안 저는 집에서 준비해 간 과일과 채소로 아침,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점심은 푸짐하게 먹고 싶었지만 아무거나 군의 입맛에 밀려 이도 쉽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입맛을 살리기 위해 나온 단호박죽에만 관심을 보이는 아무거나 군과 생각했던 된장찌개가 나오지 않아 젓가락만 깨작이는 간단 씨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고민도 잠시 한 달여 동안 조금씩 가라앉히고 있던 식탐이 그들을 통해 본전 생각과 함께 솟구쳤습니다.     

 

음식 앞에 경건하지 못한 그들을 보며 저의 쪼잔하고 소심한 복수는 시작됐습니다. 상위에 잘 차려진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하나하나 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샐러드는 상큼했습니다. 방금 한 듯한 따뜻한 잡채는 살짝 살얼음 낀 제 마음을 녹여줬습니다. 두부 강정과 메밀 고기전병은 고소했습니다. 빠르게 그릇에 담긴 음식을 비워나가는 제 모습을 보며 끝내 아무거나 군이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내일부터 1일인 거예요?


순간 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건강을 위해 지켜왔던 한 달의 시간이 소심한 복수를 위해 무용이 됐습니다.

'으아악, 제발 다시 돌려줘요!'

이날 이후 매일매일 일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음식의 유혹이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저의 의지를 한순간에 꺾어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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