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_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허무한 기대나 생각
이불을 돌돌 감아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얼굴 위로 밝은 빛이 일렁입니다. 따가운 아침 햇살이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더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잠을 깨웁니다. 해의 재촉에 응답이라도 하듯 이불속의 애벌레는 곰지락곰지락 거립니다. 불쑥 이불을 뚫고 나온 손이 눈을 비비며 서서히 애벌레 정체를 드러냅니다. 때마침 방문이 살짝 열립니다. 방문 사이로 빼꼼히 얼굴만 밀어 넣은 간단 씨가 말합니다.
일어났어?
간단 씨를 따라 갓 내린 은은한 커피 향이 함께 방으로 들어와 조금 남은 잠까지 날려버립니다.
이제 막 일어났어요.
그래. 그럼 세수하고 나와 아침 먹게.
네.
대답과 동시에 저는 이불을 걷어차며 침대에서 거대한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갑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 화들짝 놀랍니다. 부스스한 사자 갈퀴 같은 머리. 새벽녘에 겨우 잠들어 팅팅 부은 얼굴. 그 얼굴 어디에도 찾기 힘든 눈. 참으로 민망한 모습입니다.
서둘러 세면대 수도꼭지를 들어 올립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찬물로 빠르게 부은 모습을 지워 내듯 세수를 끝내고 머리도 손 빗으로 쓱쓱 정돈해 나옵니다.
식탁 위에는 방금 전 맡은 향긋한 커피와 토스트기에서 막 구워낸 노릇노릇한 식빵이 수줍게 김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진한 버터향을 머금은 스크램블 에그와 샐러드까지 보기에도 이쁘고 푸짐하게 차려졌습니다. 저는 식탁 의자를 빼 앉으며 간단 씨에게 말을 건넵니다.
내가 너무 늦게 잠 들어서 일찍 일어나지 못했네요. 아침 준비해 줘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아직 뜨거운 김이 몽글몽글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커피 특유의 쌉싸름함과 신 맛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괜찮아. 주말인데 늦잠도 자 줘야지.
제가 좋아하는 바싹하게 구워진 토스트에 사과잼을 바릅니다. 진한 사과 향에 빠져 한입 베어 물자 빵가루들이 춤추듯 이곳저곳으로 나부낍니다. 역시 향긋하고 달콤한 사과잼은 사랑입니다.
스크램블 에그는 버터 향에 한 번, 폭신폭신한 식감에 또 한 번 행복해지는 맛입니다. 여기에 신선한 채소들과 톡톡 터지는 옥수수 알갱이가 입안에서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미뢰를 자극해 한결 더 기분 좋아지게 하는 샐러드입니다.
온전히 음식 맛에 기분 좋아지는 시간을 즐깁니다. 마음으로 온기가 전해집니다. 따뜻한 커피와 토스트, 샐러드로 허기를 제법 채웠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앞에 앉은 간단 씨가 보입니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눈으로 왜요? 묻습니다.
어제 뭐 하다 늦게까지 안 잤어?
아차, 맞습니다. 저는 늦잠 잔 아내입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요즘 갱년기가 왔는지 잠이 쉽게 안 오네요.
간단 씨가 제 말을 듣고 눈에 가득 걱정을 담고 말합니다.
병원 가보는 게 어때? 사람이 잠을 잘 자야지. 안 그럼 이곳저곳 아픈 데가 많아질 텐데.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요즘 심각할 정도로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상이 뒤죽박죽 헝클어져 제가 생각하기에도 부쩍 짜증이 늘었고 점점 무기력합니다. 작은 것에도 쉽게 날카로워지고요.
그러게요. 병원에 가 상담을 받아봐야 할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여보 오늘 아침 너무 맛있네요. 매일 아침 누가 이렇게 상 차려 놓고 먹으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예민한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 살짝 아침 식사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결혼 후 처음인 여유로운 아침을 심각한 이야기로 무거워지기가 싫습니다.
아니, 그래도 병원이 우선이잖아
제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간단 씨입니다. 짜증이 납니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 할게요.
정말 여기까지예요!라는 마음을 담아 날카롭게 대꾸합니다.
병원이 우선이잖아. 병원이 우선이잖아. 병원이 우선이잖아......
간단 씨가 말에 버퍼링이 걸렸나! 듣기 싫다니 더 합니다.
AEC, 알겠다니깐요. 왜 자꾸 병원 이야기만 해요.
점점 날카로워지는 둘의 대화에 난데없이 아무거나 군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듭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정말 싫은 것만 닮는다더니 아무거나 군도 똑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그만해! 한 번만 부르라고. 왜 자꾸 여러 번 불러.
생각보다 너무 큰 목소리에 저도 화들짝 놀랐습니다.
엄마, 이제 일어나요. 저 배고파요. 아침 언제 먹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죠. 아침이라뇨? 저는 이미 향긋한 커피와 바삭한 토스트에 신선한 샐러드까지 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제야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봅니다. 제 눈 속에 겁을 잔뜩 먹고 서러움에 눈시울 붉힌 아무거나 군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제길! 꿈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무슨, 언제 한 번이라도 맛난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의자만 빼 앉은 적이 있다고, 얄궂은 꿈에 빵빵해진 풍선이 소리 없이 사그라지는 기분입니다. 조금 남은 잠까지 확 달아나자 저의 잠꼬대에 놀라고 배 고파하는 아무거나 군에게 미안함이 들어 꼬옥 안아 줍니다. 이제 정말 일어납니다.
방 밖으로 나오니 벌써 일어난 간단 씨가 거실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히득히득합니다. 매일 매 순간 보는 모습인데도 꿈 때문인지 유난히 얄밉고 꼴 보기 싫습니다. 은근슬쩍 다가가 발로 엉덩이를 툭 칩니다. 그제야 저를 발견한 남편이 왜? 하는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봅니다.
'제발 눈치 좀 챙겨 주세요. 이제 먹을 만큼 먹은 나잇값 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속엣말을 간신히 참으며 간단 씨에게 묻습니다.
배 안고파요? 얼른 아침 차릴게요.
서둘러 부엌으로 가 아침을 준비합니다. 일찍이 프로이트께서 꿈은 우리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일어난다고 했다죠.
그렇다고 제가 무릉도원을 꿈꾼 것도 아닙니다. 고작 아침 상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는 시시한 욕망 정도입니다.
여보, 오첩반상도 필요 없어요. 우선 당신이 저보다 먼저 일어나면 됩니다. 도저히 요리를 못 하겠다면 커피 전문점에서 내린 저렴한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에 빵집에서 사 온 샌드위치면 됩니다. 그다음 저를 깨워 주세요. 그럼 정말 인생 살 맛 날 것 같으니까요. 그까짓 것 한 번 해줘 봐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