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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03. 2023

봄이 오고 있어!

너를 응원한다.

4학년이 이렇게 힘든 거예요.


교문을 통과해 두리번거리며 저를 찾는 아무거나 군이 보입니다.

팔을 번쩍 올려 저의 존재에 대해 손을 좌우로 흔들며 알렸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울상의 얼굴이 된 아무거나 군이 달려옵니다.

'뭐야, 뭐야, 뭐냐고???'

제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하교하는 아무거나 군을 보자 즉각 이유를 찾느라 난립니다.  1초의 짧은 시간이 결코 짧지 않게 느껴지는 절대적인 시간이 아닌 상대적 시간을 경험하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제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무거나 군이 답합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인 얼굴로 하교를 하는 이유가 뭐야!'

"그래. 근데 얼굴이 무엇 때문에 울상일까?"

그러자 한 말입니다.

"힘들어요. 4학년이 이렇게 힘든 거예요!"




오랜만에 등산(?) 아니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이래 봬도 왕년에 저도 날다람쥐같이 날렵할 때가 있었습니다.(솔직히 저도 안 믿깁니다.)

제 생각에도 왕년이었나 봅니다. 힘들더군요.

겨울티를 완전히 벗지 못해 헐벗은 나무들이 쭈뼛한 둘레길이었습니다.

제법 쌀쌀한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발에 밟히는 흙이 얼어 서걱거리는 것으로 보아 둘레길의 첫 발걸음인 것 같습니다.

쭈그리고 발 밑 봤습니다. 추운 겨울날 유리창에 낀 성에처럼 흙 사이사이에 얼음이 박혀있습니다.

누구도 밟지 않은 얼음 낀 길을 걷는 느낌이 꽤 괜찮았습니다.

큰 산 그림자가 드리운 둘레길에 서서히 해가 스며들었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해가 언 땅을 따뜻하게 데우니 금세 폭신폭신해졌습니다. 마치 방금 빻은 팥고물을 밟는 기분이랄까요. 따뜻하고 포근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며 발 밑에 밟히는 서걱하거나 폭신한 흙이 오늘 아무거나 군과 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아무거나 군도 처음 가는 4학년이라는 길 위에서 낯설고 두려움으로 살짝 낀 차가운 얼음 같은 마음이요.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친구들과 서먹함이 조금 누그러지면 방금 빻아 따뜻한 팥고물 위를 걷는 폭신하고 따뜻함이 곧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둘레길에서 만난 매화입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매화가 제법 피었습니다. 이른 봄추위를 뚫고 피어난 매화의 꽃말이 인내라고 하죠. 꽃샘추위 같은 4학년 적응기를 잘 지나 활짝 웃을 아무거나 군을 응원하며 저도 인내의 시간을 견디겠습니다.

흙 사이사이 살얼음이 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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