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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02. 2023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너를 무한히 신뢰하고 지지하는 엄마이고 싶다.

"매미는 그 한 철의 노래를 위해 7년이나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자기의 재주를 갈고닦았는데도…."
.
(중략)
.
개미들은 7년이 그저 기나긴 시간이라는 것밖에는 그것이 얼마만 한 동안인지를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여태껏 살아온 동안의 몇 곱절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박완서 작가의 그림동화 <7년 동안의 잠>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동화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긴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먹을 게 턱없이 부족한 개미마을.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기름진 땅을 찾아 이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에 빠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어린 개미가 싱싱하고 큰 먹이를 발견합니다. 그건 매미입니다. 젊은 개미들은 뜨거운 여름날 자신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동안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는 매미가 얄미울 때가 많았다며 먹이로 가져가자고 합니다.

이때 늙은 개미는 매미 이야기를 합니다.

한여름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 부르기 위해 몇 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날개와 목청을 다듬는다고요. 그러자 다른 젊은 개미들은 힘든 여름날 매미의 노래 덕에 고달픔을 잊었고, 여름의 아름다움도 알게 됐다며 매미의 고마움에 대해 말합니다.

개미들은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매미의 수고로움과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합니다. 끝내 먹이가 아닌 매미로 태어날 수 있게 돕습니다. 여기서 늙은 개미는 젊은 개미들의 생각을 들어줍니다. 그들에게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젊은 개미들 스스로 매미의 인생을 깨닫게 몇 마디 말을 보탰을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짧은 식견에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고, 바로 잡을 기회도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부모든 선생님이든 옆에서 든든하게 바른길을 알려 주는 이가 있다면 말입니다. 늙은 개미처럼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무거나 군입이다. 긴 겨울잠 아니 겨울방학을 끝내고 드디어 개학일입니다. 초등 4학년이 되는 날이죠. 저는 초등 4학년, 열한 살이라는 숫자 앞에서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겁 많고, 걱정 많은 아무거나 군이 초등학교에서 가장 낮은 학년인 저(低)를 떼어내고 당당히 중간의 반열인 중(中) 학년이 되었으니 점점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아질 거란 기대에 조금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새벽 6시입니다. 간밤에 잘 잤는지 머리에 까치집을 얹은 꽤 오랜만에 보는 부스스한 모습의 아무거나 군입이다. 이게 뭐라고 귀엽고, 4학년 등교 첫날 늦잠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 고마움까지 보태져 평소보다 조금 더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아들 잘 잤어.”

“휴우우우. 네.”

한숨에 방바닥이 꺼지겠습니다.

“잘 잔 것 같은데, 웬 한숨일까?”

저는 솔직히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치가 있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4학년이라뇨. 너무 긴장돼요.”

저학년 딱지를 떼고 중학년이 되는 첫날.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덜하겠다 싶었는데 제 오산이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학교 가기 싫어요.”

이런!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수위가 높습니다.

“처음인데. 학교 다닐 때 힘들다고 했어도 가기 싫다는 말은 처음이잖아.”

정말 매년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은 단연코 처음 뱉은 말입니다.

“새로운 친구 사귀는 것도 무섭고, 새로운 선생님은 어떤 분 일지 너무 겁나요.”     


아무거나 군은 아주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예민한 만큼 타인의 눈치도 많이 봤고 겁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집단속에 적응이 어려웠고 우리는 눈물, 콧물 쏙 뺄 정도로 힘든 시기를 제법 오래 보냈습니다. 하지만 잘 견뎠고 이겨냈다 생각했는데 아직은 멀었나 봅니다.


아무거나 군이 3학년일 때는 수시로 학교 상담실을 찾아 상담받았습니다. 자기 기준이 명확한 아이다 보니 본인 기준에 친구가 나쁜 행동을 했다 생각하면 바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한동안 저는 아무거나 군의 이런 행동에 머리가 아프게 고민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하나하나 문제 걸면 문제 아닌 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무거나 군의 예민한 성격이 교우 관계나 학교생활에 까탈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엄마로서 걱정이 아이 마음보다 우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이 조언하게 했고 아무거나 군은 더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7년 동안의 잠>을 읽고 아이 생각을 듣고 들었습니다. 함께 슬퍼했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충분히 들어주고 마지막으로 다른 친구와 아무거나 군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상담 횟수가 줄었고, 가볍게 넘길 줄도 알게 됐습니다. 부모인 저나 늙은 개미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축 처진 어깨로 등교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좀 더 스스로 부딪히고 이겨내야 할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무거나 군의 힘든 시간에 아낌없는 관심과 지지를 보낼 뿐입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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