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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08. 2023

3월은 3월이다.

새 학기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등교를 위해 아들과 현관을 나서는 순간 달콤하고 은은한 향이 먼저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얼마 전부터 꽃망울이 적당한 때를 기다리던 서향(천리향)이 드디어 벌어졌나 봅니다.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더니 제법 이름값을 합니다. 마법의 향기라도 맡은 듯 좋은 향기에 한껏 기분이 올라가는 아침입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오전 열 시 삼십 분을 조금 넘긴 시간에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1, 2교시를 끝내고 20분의 중간 놀이 시간이 있습니다.

중간 놀이 시간을 아무거나 군이 놓치지 않고 어김없이 저에게 콜렉터 콜로 전화를 합니다.

대개가 전화를 받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자기 말만 하고 뚝 끊어 버리죠.

"엄마, **이가 나한테 손가락 욕했어요."

"엄마, **가 내 멱살 잡았어요."

이날도 같은 반 친구의 이야기였습니다. 며칠째 같은 친구 이야기라 걱정이 됐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한 전화 내용의 내막을 알 수 없으니 그때부터 저는 하교 때까지 머릿속으로 걱정 굴리기를 합니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각색에 편집도 해보며 북 치고 장구까지 치며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습니다.

 

드디어 아무거나 군이 하교를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로 산 세월이 있으니 절대 바로 제 걱정을 내색하면 안 됩니다. 즉 분위기를 타야 한다는 말입니다. 배구로 치며 시간차 질문 정도가 될까요. 기다립니다.

이날은 이미 간단 씨가 늦은 귀가를 통보한 날이라 둘은 모처럼 하교 후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엄마 밥이 좋아 급식은 최대한 조금만 먹는 아무거나 군은 이 시간 대체로 허기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간식을 준비를 했고 아무거나 군은 뒷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뽕~" 방귀 소리가 납니다.

"뭐지, 누가 방귀 뀌었나?"

우리는 서로 방귀로 많이 놀립니다.

"아니요. 제가 엄마를 위해 알랑방귀 꼈어요."

아무거나 군이 웃으며 가장 잘하는 아재개그를 터뜨렸습니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박장대소했고, 분위기가 제법 편해졌습니다. 때가 적당합니다. 아무거나 군에게 오전의 전화 내용에 대해 물을 적절한 시간이란 말입니다.

"아들, 오전에 엄마한테 전화한 거 무슨 일이야?"

"뭐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아니, 아까 **가 멱살 잡았다고 했잖아."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합니다.

"아, 잊고 있었는데... 아니 **가 내 멱살을 잡아서 하지 마라고 하니깐 **는 친구한테 하는 인사라고 했어요."

헉! 인사가 멱살 잡기라. 요즘 세대는 인사도 요란하고 희한하게 하는 건가요.

"그래. 그때 네 기분은 어땠어?"

"음, 나빴어요."

"그럼. 그 친구에게 네 기분 이야기 했어?"

"아니요."

아니라는 대답에 답답해졌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 앞으로도 만만하게 보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 잔소리 같은 조언을 쏟아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은근슬쩍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습니다. 그만하라는 표현인 거죠. '그래 그만한다. 그만해.'

저는 입을 닫았지만, 머리와 가슴은 닫히지 않고 그 사이로 뜨뜻미지근한 걱정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부터 모닝빵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는 걸 계속 잊고 있다 드디어 이날 샀습니다. 도서관에서 늦게 귀가한 아무거나 군은 빵을 보자 저녁으로 딸기잼을 바른 모닝빵으로 대신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야 좋죠. 간단하니. 몇 개 먹을지 묻고 빵 사이를 갈라 잼을 바르고 접시에 담았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요거트도 하나 꺼내 식탁에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아들, 빵 먹어."

후다닥, 레고 놀이하다 급하게 뛰어나옵니다.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물만 묻혀 잠옷에 쓱쓱 닦으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역시 최고예요."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습니다.

"응? 갑자기 웬 최고"

아무거나 군이 의자에 앉으며 저를 보며 답합니다.

"이렇게 준비를 완벽하게 해 주셨어 감사해요. 그래서 엄마는 최고예요."

'아, 빵이랑 요거트에 감사하다는 말이군'

"아들, 엄마는 솔직히 걱정이야. 네가 할 수 있는 걸 엄마가 다 해서 나중에 엄마를 원망할까 봐!"

효능감을 높여야 할 시기에 뭐든 제가 해 주는 건 아닌지 걱정을 아무거나 군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그건 먼 미래잖아요. 미래에 제가 어떻게 말하지는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엄마에게 감사해요."

'우와, 이런 멋진 말을 한단 말이야!'

저 스스로 놀라며 여태 머릿속에 흐릿하게 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현재, 지금을 살아라!' 말하지만 솔직히 어렵거든요.  말이야 지금에 충실하고 현재에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지만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거나 군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무거나 군보다 먼저 살았던 인생 선배이자 엄마로서 잘못된 행동이나 결정으로 겪을 시행착오를 미리 걱정해 아이 스스로 넘어지고 깨지며 견디고 일어날 시간을 아예 배제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참으로 제가 가소롭습니다. (신도 아니고 ㅋㅋ)

엄마인 저는 아무거나 군의 지근거리에서 이런저런 걱정을 이야기하면 들어줄 마음과 자세만으로 충분한 거였습니다.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걸 이제 알겠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그렇게만 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알았어. 엄마가 듣는 건 제법 한다. 잘 들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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