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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19. 2023

난리부르스 호르몬

화내고 잘 삐치는 우리의 일상

평소의 토요일보다 분주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며칠 전부터 주문했던 김치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곧바로 점심으로 아무거나 군이 엄지 척하며 가장 맛있다고 하는 김밥을 쌌습니다. 점심에 약속이 있었거든요.


이날 항상 아무거나 군과 함께 가던 도서관을 혼자 갔습니다. 우리는 마치 바늘과 실처럼 늘 붙어 다녔는데 말이죠. 도서관에서 모임이 끝나면 제 친구들과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거나 군에게 도서관은 엄마와 늘 함께인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랬던 곳을 저 혼자 간다고 했으니 많이 아쉬웠을 텝니다. 그래서 삐쳤습니다. 제가 집을 나설 때까지 토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과하게 아쉬운 척 안타까운 척을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홀가분한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알면 섭섭하겠지만요.


아무거나 군이 부쩍 "나 상처받았어요. 나 화났어요. 나 정말 섭섭해요." 말합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을 볼 때 틀면 나온다고 하잖아요. 아무거나 군의 마음이 딱 그런가 봅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토라지고 삐치고 아주 감당이 어렵습니다. 그럼 그걸 또 제가 잘 받아주냐면, 아닙니다. 아무거나 군의 삐침이 잦을수록 제 분노게이지는 천장을 뚫을 기세입니다. 이러다 어느 순간 '펑' 터져 버릴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합니다.


친구들 만나 이른 저녁을 먹으며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웃고 떠들며 신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 핸드폰이 방정맞은 '깨톡, 깨톡'을 외쳐댔습니다. 감이 왔습니다. 삐쳐 배웅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아무거나 군이 점점 제 근황이 궁금했던 겁니다. 저는 분위기를 깨기 싫어 대충 모른 척하고 그냥 뒀습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제 깨톡에 안달이 났습니다. 끝내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것도 영상통화로요.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들과 아무거나 군은 돌아가며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없는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지 나열했고 그때마다 제 친구들은 "오우, 대단하다. 잘했네." 추임새로 분위기를 띄웁니다. 정작 저는 건성으로 답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집에서 하자며 전화 끊기를 종용했습니다. 아무거나 군도 눈치가 제법 많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전화를 마무리하며 저에게 빨리 집에 오길 종용했습니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고 한참 올라가던 분위기는 전화 통화로 한순간에 쭈르륵 미끄럼틀 타 듯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모임을 얼렁뚱땅 마무리했습니다. 당연히 다음에 만나길 기약하면서요. 솔직히 저도 아무거나 군의 삐친 오전 모습에 미안함도 있어 집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한 시간가량을 차로 달려 돌아온 집은 정적만이 저를 마중했습니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곤히 자고 있는 아무거나 군과 간단 씨의 모습에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나름 편안해진 마음으로 문을 닫고 부엌의 식탁을 찾았습니다. 식탁 위에 휘갈겨 쓴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거나 군이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루 동안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섭섭함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저도 잠들기 전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습니다. 아무거나 군에게 감사한 깊은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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