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른 김치전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하는데...

by 핑크뚱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도 무엇이든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좋은 글이 되는 거겠죠.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요리조리 삼백육십 도로 돌려보고, 쪼개고 쪼개 스물네 개로 조각내 세세히 살펴보면 좋은 글이 나올까요. 비바람이 요란한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등굣길 뒷좌석에 앉은 아무거나 군이 차창으로 부딪히는 빗방울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툭 던진 "새들이 차창으로 날아들어요." 혼잣말 같은 말이 제 머릿속으로 의문의 물음표로 날아왔습니다. 이런 게 평범한 일상을 비틀고 자세히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요.


"새가 어디에 있어?"

어떻게 새를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바람에 빗방울이 날아다니는 게 꼭 새가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니는 것 같은데요."

오우, 이런 걸 생각의 전환이라고 하는가. 아무거나 군의 시선을 한번 따라가 보고 싶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후에는 태풍 같은 거센 바람에 휘리릭 날아가 버린 걸 까요. 비를 보며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고소한 기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전을 상상했습니다.


"여보, 오늘 김치전에 막걸리 어때요?"

우선 간단 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비가 선택한 오늘의 전인 김치전을 미끼로 던졌습니다.

"좋지."

간단 씨는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는 걸까요. 아마도 하겠죠. 하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답을 합니다.

오래 생각하고 자세히 생각해야 한다는데 짧고 쉽게 생각합니다.


비바람을 뚫고 하교 한 아무거나 군과 간단 씨를 위한 막걸리를 함께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요리인 김치전을 위해 김치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우이 C. 얼마 남지 않은 김치에 절망의 거친 말이 절로 뱉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조금씩 남은 묵은지를 모아 둔 김치통을 꺼냈습니다. 와, 이런, 맛있게 먹었던 김치를 이곳에 꼭꼭 숨겼었나 봅니다. 절망이 환희로 바뀌는 것은 순간입니다. 넉넉하게 한 포기를 꺼내 미리 만든 반죽과 만남을 주선합니다. 서로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제법 잘 어울리기까지 합니다.


미리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반죽 한 주걱을 올립니다. 고르고 얇게 펴는 것도 잊지 않고요. 반죽옆에서 타닷타닷 기름이 사방으로 튀며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번들번들하게 변한 싱크대에 짜증보다 노릇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질 김치전을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누구나 이 행복을 알지만 누구나 누리진 못하는 행복입니다.


김치만으로도 짭조름한 간을 듬뿍 품고 있지만, 간단 씨는 특이합니다. 전을 먹을 때는 항상 간장 맛도 첨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별수 있나요. 국간장과 진간장을 2:3 비율로 담고 화끈하게 매운 청양고추를 하나 쫑쫑 썰어 넣어주면 간단 씨의 입맛을 완벽하게 생각한 술상이 차려집니다.


오늘도 간단 씨네 오픈 주방은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합니다. 짭조름하고 바삭바삭함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것은 내일부터 해 보기로 하죠 뭐. 오늘은 김치전에 충실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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