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엄마
내 생애 첫 고래가 된 날 밴댕이도 함께다.
벌써 봄이구나 하던 순간이 벌써 여름이다로 바뀐다. 유난히 올봄은 꽃들이 더 예뻤고 화사했던 시기라 초등 4학년이 된 아무거나 군과 등굣길은 봄기운 아지랑이 피어나듯 더 따뜻했다. 반면에 삼 년을 다닌 학교지만 여전히 낯설고 버거워하는 아무거나 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도 그만큼 더 커졌다.
마냥 귀엽고 허용적이던 저학년을 지나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아진 어중간한 중학년이 됐다. 4학년 또래 아이들은 스스로 전능함이 최고조인 시기라 좀 더 과격했고, 좀 더 거친 언어를 사용했다. 그 틈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낀 아무거나 군은 또래들에 치여 학교생활을 더 힘들어했다. 4학년이 된 첫날부터 중간 놀이시간으로 주어진 이십 분의 시간 대부분은 엄마인 나에게 친구들의 괴롭힘을 하소연하는 시간이 됐다.
코로나 시작과 함께 초등 1학년인 된 아무거나 군의 학교생활 초반 대부분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나 역시 처음 학부모가 되어 서툴고 두려웠다. 그러니 아무거나 군과 나. 모두가 불안한 시간이었던 거다. 그러니 일면식도 없던 담임 선생님과 비대면 첫 학교 상담이 오죽했겠는가. 전화기 너머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고작 몇십 분의 상담이 나와 내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상담이라 부르고 낯선 목소리로 안부 인사 정도를 건네는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서서히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그동안 세상의 일시정지 됐든 것들이 조금씩 실행 버튼이 눌러지고 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는 학교의 부모상담도 대면이 가능하게 됐다. 나는 몇 주간 힘들어하던 아무거나 군의 모습에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아무거나 군과 내가 나눈 대화들 중 상담이 필요한 것을 고르고 골라 대면 상담을 신청했다.
드디어 상담 날이었다. 개학 한 달을 갓 넘긴 시점이었지만 느낌상 너무도 긴 시간을 학교에 보낸 듯한 착각이 들만큼 나 역시 한 달이 버겁게 느껴진 학부모였다. 교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나의 상담 시간을 격하게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작고 아담한 체형에 짙은 중년의 느낌을 풍기는 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고 선생님이 나에게 앉을 의자를 권했다. 자리에 앉자 상담은 시작되었다. 내가 아닌 선생님의 담임으로서의 고충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요즘 아이들 입이 너무 거칠다. 욕설은 애교다. 또 어찌나 힘센 아이들인지 싸움을 막아내기에도 힘에 부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집에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정리했던 내 상담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호응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꽤 긴 시간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 듣고 있었더니 어느 센가 상담 시간은 끝나 있었다. 나의 첫 25분의 대면 상담은 선생님의 걱정 가득한 이야기 20분,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 중 극히 일부만 선택해 말한 5분을 끝으로 마감되었다. 나는 상담을 끝내고 교실문을 나오는 순간까지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꼬리에 붙이고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상담 중간에 반 아이들이 워낙 별나고 과격해 나름 그림으로 살짝 심리를 엿볼 수 있는 검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 그림을 팔랑팔랑 넘기며 아이들이 얼마나 불안한지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넘겨지는 그림들 속에서 아무거나 군의 그림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거나 군의 그림을 보여달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 했다. 왠지 선생님이 안타까워하는 정서적인 문제의 당사자가 아무거나 군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거 보세요’하는 비난투의 말씀을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상담 후 더 복잡해진 마음으로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아무거나 군을 만나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선생님께는 차마 묻지 못했던 아무거나 군이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에 관해 넌지시 물었다. 아무거나 군의 이야기에 따르며 선생님이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 가족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랬구나. 틀림없이 어항 속의 물고기 가족은 아이들의 원가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 궁금했다. 아무거나 군에게 나와 간단 씨를 어떤 물고기로 그렸는지 물었다. 아무거나 군은 마치 '왜 그런 게 궁금해요?' 묻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거나 군은 간단 씨를 해파리로 나는 고래로 그렸다고 했다. '이건 뭐지? 가족인데 이렇게나 다른 종으로 그렸단 말인가?' 궁금증은 머릿속에서 공장처럼 계속계속 질문을 만들어냈다. 나는 아무거나 군에게 자신을 무엇으로 그렸는지 물으니 오징어로 그렸단다. '엥?' 이건 더 황당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러고는 묻는 질문을 요리조리 피했다. 그렇다고 나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몇 날 며칠 지나가듯 가볍게 끈질긴 질문을 계속 이어 갔다.
간단 씨는 술을 많이 마시니 술 독이 몸에 있을 듯해 해파리로 그렸고, 나는 덩치가 어마어마하니 큰 고래가 생각나 그렸다고 한다. 그럼 아무거나 군은 무엇 때문에 오징어냐고 물으니 간단 씨랑 내가 오징어를 좋아하고 자신도 아빠랑 엄마 모두에게 사랑받으니 당연히 오징어가 생각나 그렸다고 한다. 아무거나 군이 그린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의문이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정말 아무거나 군의 마음은 괜찮은 건지 여전히 걱정되고 궁금하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를 닮은 고래. 그렇게 나는 몸집이 큰 고래가 됐지만 속은 밴댕이처럼 작고 좁아 아무거나 군의 그림에 관한 걱정을 한가득 마음에 담아 어느 때보다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