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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pr 27. 2023

선생님이 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오해하셨나 보다.

이르면 초등 4학년부터 수포자가 탄생한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도 성급한 결론을 내렸을까요? 하는 의문도 있지만, 초등 4학년인 아무거나 군을 키우는 학부모인 저는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습니다.


배워서 익힌다는 학습. 아무거나 군은 학습을 싫어합니다. 아니 익히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학생이니 배우는 것까지는 그냥저냥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어디 그런가요. 배운 것으로 끝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하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 배웠으나 이해하지 못한 것은 가정이나 학원의 도움이 필요하겠죠. 저도 부모이니 아무거나 군에게 여러 번 반복해 익히는 것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저의 문제인지 귀를 꼭꼭 닫아걸고 받아들이지 않았죠. 


고백하자면 솔직히 저는 지금까지는 학습적인 면에서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언어적으로 빨라 한글도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깨쳤으니깐요.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은 힘든 아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소심함 덕에 아무거나 군을 가르치려다 쉽게 마음에 상처받아 쉽게 포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쉽게 마음을 내려놓은 저는 지금의 아무거나 군을 보면 볼수록 문제점만 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몇 개의 구멍이 점점 수와 크기를 불려 제 두 손, 두 발로는 막아 내기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초등 2학년일 때 당연히 익혔어야 할 구구단이 가장 큰 구멍입니다. 구구단의 원리는 쉽게 이해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외우기는 어려워하더니 익히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3학년을 거쳐 지금의 4학년이 된 겁니다.


수학의 기본인 연산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아무거나 군도 지금의 자신을 상당히 난감해합니다. 세 자릿수 곱셈과 두 자릿수 나눗셈에 들어갔거든요. 으악~곱셈과 나눗셈하면 떼레야 뗄 수 없는 구구단! 구구단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으니 문제를 푸는 건 뭐..... 정답 쓰기가 쉬울 수 없겠죠.


얼마 전 수학 학습지를 숙제로 받아 왔습니다. 웬일인지 아무거나 군 열심히 풀었습니다. 저에게 다 푼 학습지 확인을 부탁까지 하더라고요. 아무거나 군의 심경에 변화가 온 걸까요. 그에 반에 요즘 저는 삶에 의욕이 바닥입니다. 무기력합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잠이 옵니다.

학습지를 푸는 아무거나 군 옆에 자리 잡고 앉아 부모의 기본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눕고 싶어 졌거든요. 수학 학습지를 푸는 아무거나 군 옆에 조용히 누웠습니다. 누웠더니 자연의 섭리처럼 잠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제 마음과는 무관했습니다. 아시죠. 자연의 섭리!


아무거나 군이 학습지 한 장을 다 풀고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나름 저의 장점이 잠 귀가 밝습니다. 저는 바로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눈앞은 가물가물했고 두 자리가 세 자리로 보이는 알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었죠. 한 장이 두장이 되고 저는 모든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뭐, 대충 훑어본 거죠. 아무거나 군에게 잘 풀었다는 칭찬도 잠결에 건넸고 제 말에 안도의 숨 고르기를 하며 그날의 학습지 풀이는 스스로 만족하며 끝났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간 아무거나 군 1교시 수업이 끝났을 시간에 콜렉터 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1번 틀렸는데요."

"뚜뚜뚜"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솔직히 지금에야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만 그때는 그냥 제 귀에 앙앙거리는 소음만 들렸습니다. 전화는 받았는지도 가물가물하게 잊혔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하교를 해 집에서 한참이나 레고놀이를 하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기 전까지는요.

"엄마, 우리 선생님은 저를 오해하신 것 같아요."

오해란 단어에 제 머릿속은 부정적인 감정이 꿈틀거렸습니다.

'오해? 뭐지? 뭘까?'

"무슨 말이야. 오해를 하셨다니?"

"어제 엄마가 확인해 준 수학학습지 1번이 틀렸더라고요."

'이런. 문제 중 가장 쉽게 낸다는 1번부터 확인을 제대로 못했구나.'

순간 얼굴에는 열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올라와 붉어졌습니다.

"아, 틀렸어. 엄마가 제대로 안 봤나..."

말 끝을 흐리면 질문을 했습니다.

"근데, 그게 오해랑 무슨 상관이야?"

"아니. 선생님이 잘한다고 대충 풀면 안 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수학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데 말이죠."

부끄러워 붉어진 얼굴은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에 더 붉어졌습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아니야. 엄마는 너 수학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 선생님도 수업시간에 너 모습보고 그런 말 하신 게 아닐까?"

"음... 그런가요."

저는 현재까지 아무거나 군이 정말 영특하다는 오해(?)를 쭉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 아무렇게나 구겨진 수학학습지를 가방에서 발견했습니다.

예상외로 모든 문제에 동글동글한 정답 동그라미만 있더라고요.

'역시 내가 오해하는 게 아닐지 몰라'

생각하며 흐뭇한 웃음을 짓다 한 문제에 꽂혔습니다.

저는 바로 아무거나 군을 불렀습니다.

"아들. 선생님이 너를 오해하시는 게 확실한 것 같아."

"네. 뭐가요?"

"아니, 수학 학습지 문제 틀렸는데 맞다고 하셨네. 당연히 너는 다 맞았을 거라 오해하셨어 그런 게 아닐까?"

아무거나 군이 대답이 없습니다. 잠시 후 틀린 문제에 대해 왜 틀렸는지 알려주는 저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만큼 큰 눈을 하고 뭐라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 엄마는 자신의 자식을 천재로 오해한다는데, 나도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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