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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y 05. 2023

욕망이 얹어지는 순간들

내려놓기가 뭐라고...

처음은 단순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시작됐다.


간단 씨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알코올을 좋아했고 즐겨 마신다. 나도 술 마시는 간단 씨를 무턱대고 싫어만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기호하는 음식은 다르니 오히려 그의 건강을 염원하며 편평한 돌멩이 하나를 내 마음에 놓았다. 처음은 그랬다. 걱정과 사랑이 먼저였다. 시작이 더디지 하나가 둘 되고 셋이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걱정과 사랑은 두드러지게 욕심으로 대체되어 쌓아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소원이라 말하고 안에서는 이글거리는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 점점 내 마음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제법 굵다. 주말에 아무거나 군과 나는 나름 바쁘다. 아무거나 군의 도서관 수업이 두 곳에서 있기 때문이다. 오전과 오후에 한 곳 씩. 오전 수업이 있는 곳은 전국적인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곳으로 주말마다 어린 이용자들을 위한  즐길거리가 가득한 곳이라 가족 단위로 이용자가 많다. 그에 반해 주차 공간은 열악해 주말의 주차장은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이번 주말은 비까지 내리니 보지 않아도 눈에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러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가기 싫다는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전날 과하게 취해 아침까지 흐리멍덩한 간단 씨와 한 공간에 있기가 부담스러워 잠깐의 투정은 습한 공기에 연기처럼 흩어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일찍 준비해 서둘러 도착했지만 역시나 주차 공간은 없다. 몇 바퀴를 헛돌다 수업 시간이 임박한 아무거나 군을 먼저 내려줬다. 그 후에도 나 혼자서 동네 몇 바퀴를 돌고서야 겨우 도서관에서 거리가 있는 곳에 자리를 발견하고 주차를 끝냈다. 반납할 책과 읽을 책을 가방에 욱여넣고, 우산을 쓰고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짜증스러웠다. 도서관 주차장이 차들로 가득한 만큼 실내도 북적북적 사람들로 붐볐다. 늘 보는 광경이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거나 군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며 책을 펴 읽고 있는데, 하필 내 앞에 다정한 부부가 앉았다. 알콩달콩 신혼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중년의 부부. 그들은 각자의 책을 펼치고 공부와 일상의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신공을 보여주신다. 특별히 내 앞에 앉은 부부만 그런 건 아니다. 주위가 온통 그렇다. 그렇게 도서관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주 다정한 부부,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내 마음으로 부러움이 비집고 들어와 그득하게 들어찼다. 여기에 유독 나 혼자 육아하는 듯한 마음에 쓸쓸함과 고단함까지 보태졌다. 이렇게 매주 내 마음의 돌탑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날도 부러움과 시샘이 내 마음에 자리 잡은 탑 위로 덩어리처럼 들러붙어 올려졌다. 간단 씨는 도서관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질색팔색하니 내가 욕심내는 도서관에서 단란한 우리 가족은 상상하기도 힘드니 더 그랬다. 아무거나 군의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이럴 때일수록 시간은 더디게 멈춘 듯 천천히 흐른다. 그럴수록 내 안에 요동치는 욕망들은 그만큼 더 위태위태하다.


드디어 아무거나 군의 수업을 끝이 났다. 내 마음과는 별개로 수업이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만화책을 마음껏 읽을 기대가 합쳐져 우중충한 날씨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무거나 군이다. 그렇게 아이는 만화책을 오래, 긴 시간 앉아 읽었다. 오후 수업을 위해 이동하기 전까지도. 점심시간을 한참 지났다. 허기진 뱃속을 채워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 간단하게 아무거나 군이 좋아하는 감자튀김으로 점심을 대신하기로 했다. 주차가 편한 대형마트에 있는 햄버거 전문점으로 갔다. 아직 햄버거는 먹지 않지만 감자튀김을 너무 사랑하니 괜찮은 선택이다. 옆에 나란히 있는 서른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중 아무거나 군이 좋아하는 요거트 맛을 주문해 함께 먹기로 했다.


대형마트에 도착해 무빙워크 위에 감자튀김과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으로 마냥 신이 난 아무거나 군과 나란히 섰다. 주말이라 가족으로 군집을 이루어 가득하다.

“아들. 너에게 도서관은 어떤 느낌이야?”

가족들의 무리 속에서 반쪽짜리 같은 나와 아무거나 군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저는 신나고 재미있고 마음껏 책 읽을 수 있어 기분 좋은 곳인데요. 엄마는요?”

역시나 아무거나 군답게 혼자만 답하는 걸 싫어한다.

“엄마는 욕망들로 가득한 곳 같아.”

“엥, 욕망이요?”

“응. 솔직히 엄마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너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며 시원하거나 따뜻한 차도 한잔 하고, 즐기는 곳이었으면 했거든. 하지만 그렇지 못하잖아. 아빠는 도서관을 싫어하니 항상 우리는 반쪽짜리 가족 같아.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자리에 욕심이 모이고 모여 큰 욕망의 덩어리가 된 것 같아.”

내 말에 아무거나 군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웃음을 보이면서 다시 묻는다.

“그럼 그 욕망은 엄마보다 커요?”

“아니. 엄마 덩치보다는 작지. 하지만 심장보다 커진 것 같아.”

“심장보다 얼마나 더 커요? 손톱만큼이요? 아님 주먹만 해요?”

“그냥 심장을 뚫고 나오려고 하는 정도.”

그럼 밖으로 보내면  돼요?"


아무거나 군의 '밖으로 내보내면 안 돼요?' 하는 물음에 순간 생각이 스쳤다.

'그래. 뭐라고 미련하게 자꾸 쌓기만 했을까. 그냥 손에 쥔 돌멩이를 내려놓자.'

나 스스로 이미 알고 있도 미련스럽게 모른 척 아닌 척했다. 욕심인 걸 안다. 욕심을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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