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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y 05. 2023

어린이날

오늘이 후회되는 말이나 행동은 그만!

간단 씨는 차창으로 토도독,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어도 마치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하게 부쳐지는 김치전 소리 같다며 바삭한 전과 찰떡궁합인 막걸리가 생각난다며 한 잔. 고된 노동에 땀으로 온몸을 적시고 돌아와서는 시원한 맥주 샤워가 필요하다며 한 잔. 유난히 삶이 고되고 버거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온 날에는 입에 쓴 소주가 생각나 한 잔. 말간 하늘에 이글거리는 해를 올려다본 날은 눈이 시려 눈물이 났다며 눈물을 안주 삼아 한 잔. 이렇게 매년 매달 매일이 술을 마시기에 적당하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아무거나 군이 '함께 놀아주세요. 놀러 나가요.' 말하면 비가 와서 '안 돼!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안 돼! 추워서 싫어!' 안 되고 싫은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는 억압받는 어린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색동회를 조직해 어린이날을 선포했다죠. 그로부터 정확히 10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은 오늘 우리 집의 간단 씨는 어린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했던 소파 방정환 님에게 호되게 혼나야 합니다.


아무거나 군은 10살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레고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레고야 어릴 때부터 선물로 받아 장난감으로 항상 가지고 놀았지만 스스로 생각한 모형을 만들고 부수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이 작년부터입니다. 아무거나 군을 키우며 예민해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무엇을 사달라, 어디 가자며 떼를 쓰거나 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런 아무거나 군이 한 달 전부터 레고 랜드에 가고 싶다며 노래 불렀습니다.


겉으로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마음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안이 넘치는 곳이라 방문을 막아 세웠습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무거나 군의 계속되는 애원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뒤늦게 누구보다 내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어린이날 입장권을 예매했습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요. 정말 예매 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러니 날씨가 제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간단 씨는 전국적으로 강풍을 동반한 강한 비가 예상된다는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는 예매를 취소하길 원했습니다. 요즘 부쩍 간단 씨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한 저였어일까요. 취소라는 말에 제가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처음은 비가 좀 내려도 어린이는 어떻게든 잘 노니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씨알도 안 먹히더군요. 무조건 취소만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은 비 오면 술 안 마셔요? 더 마시지 않아요? 아들이 정말 가고 싶다는데 조건 없이 가면 안 돼요?"

제 말에 할 말을 잃은 간단 씨는 마지못해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 오는 날 레고 랜드에 갔습니다.


간단 씨도 무엇이든 하고 싶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젠 뭐든 시시한 지금의 어른이 되었잖아요. 우리의 아무거나 군도 얼마 있으면 부모의 관심과 손길을 부담스러워할 사춘기가 찾아오고 그러다 성인이 될 겁니다. 그때는 우리가 함께하고 싶다고 애원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 원하는 게 많지 않은 아무거나 군이 하고 싶다는 것. 함께 하자는 것. 을 이야기하면 제발 당신이 '안돼!', '싫어!' 부정적이고 거부하는 말은 먼저 하지 말고 들어줘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이 후회되지 않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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