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 재미있게 봤던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에서는 스스로 똑똑하다는 자의식이 강하다 못해 철철 흘러넘치는 똘똘이 스머프가 나옵니다. 무엇이든 참견하기 좋아하고 잘난 체 대마왕인 그는 까맣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죠. 똘똘이 스머프의 영향인 듯 아닌 듯 철없던 어린 저는 까맣고 동그란 안경을 쓴 사람은 다 잘난 체하는 재수 없는 사람일 거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산에 에워싸여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초등학교를 다닌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죠. (초등학교 때까지 같은 반 친구 중 안경 쓴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중학교는 면소재지에 있어 안경 쓴 친구들이 제법 있더라고요.) 저는 똘똘이 스머트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경 같은 건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만큼 생각도 어찌나 좁고 좁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깁니다. 이런 저에게 강변가요제를 통해 짜잔 등장한 인물이 있습니다. 가수 이상우 씨였죠. 정말 그는 어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안경이 너무 쓰고 싶어 알 없는 안경을 썼다고 했거든요. 안경을 쓰고 싶었다니요. 그 말은 마치 스스로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같았어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그에게서 처음 낯섦을 느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후 세 번이나 강산이 갈아엎어지고도 몇 년이 더 흐른 후 어린 제가 느꼈던 낯섦이 아무거나 군을 통해 다시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네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쓰고 싶어 했습니다. 그 장난감을 간단 씨가 쓰고 있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좋았을까요. 간단 씨의 안경을 자신의 귀에 걸고 거울을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도 아끼지 않았고요.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있고 좋았을까요? 그러다 간단 씨를 따라 간 안경점에서 아무거나 군은 가수 이상우 씨처럼 알 없는 안경을 구입해 집으로 왔더라고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요. 그때 얼굴 가득 번지던 웃음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던 행복의 모습이었습니다. 암튼 그렇게 한동안 알 없는 안경을 자주 오래 썼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초등 1학년일 때 뒷자리에 앉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칠판 쪽 모니터 글씨가 퍼져 보인다고 해서 처음 안과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검사 후 시력에는 문제가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워낙에 일찍부터 핸드폰이나 탭 등에 노출이 많아 시력이 금방 뚝 떨어질 수 있다며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권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은 잊지 않고 안과를 찾습니다. 올해도 4월에 정기검진일이라며 알림 문자를 받았지만 무시했습니다. 매번 변화 없는 시력에 안일했던 거죠.
며칠 전 아무거나 군이 먼저 안과에 가자고 했습니다. 자신의 시력이 알고 싶다면서요. 그렇게 정기검진일을 넘겨 찾은 안과에서 시력이 많이 떨어졌고, 양안 시력 차이도 커다고 했습니다. 잘 보이는 쪽이 있어 스스로 안 보인다는 인지를 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그때 제 마음으로 7가지 무지개색보다 많은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진 시력에 놀랐습니다. 없던 것이 떡하니 얼굴을 차지하고 있어 불편해할 모습에 안타까움이. 요즘 부쩍 핸드폰을 많이 보던 모습에 화가. 어두운 곳에서 책 읽던 모습에 짜증이. 그래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모습에 귀엽고 사랑스러움이. 안경에 여러 개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지저분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아무거나 군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지문이 콕콕 찍힌 안경 너머로 봐야 한다니!왠지 서로의 마음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생긴 느낌입니다. 안경알을 똑똑 두드리며 아무거나 군을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말입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아무거나 군은 대수롭지 않아 합니다. 불편함도 아직은 모르겠다면서요.
그래 네가 괜찮으면 된 거지. 걱정이야 내 거니 내가 해결하면 될 일이고. 그동안 너의 짝사랑이 완전한 사랑으로 변했으니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