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접니다. 정말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결혼 전에는 달력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겹치고 겹쳐 그리며 기대했던 휴일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동글동글 동그라미가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저를 노려보는 잔혹 연휴가 되었습니다.
때 이른 태풍 소식에 짧은 1박 2일의 여행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에는 양동이를 들이 부듯 내리는 비에 겁이 일어 일찍 집으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자마자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의 토닥거림에 다시 눈을 감고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습니다.
어제는 굵은 빗줄기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 서둘러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비가 내렸으나 보슬보슬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굵어진 빗방울을 보며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여행을 끝내고 come back home 한 우리는 대만족 했습니다.
돌아와 아무거나 군도 여행의 즐거움과 신나는 마음을 끊임없이 재잘재잘했습니다. 동시에 "심심해요. 놀아주세요."도 무한반복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간단 씨와 아무거나 군은 여느 사춘기 부자 사이 같습니다. 좋지 않다는 말이죠. 오죽하면 아무거나 군이 스스로 간단 씨와의 사이를 견원지간이라고까지 말했겠어요.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힘도 생긴 아무거나 군이 간단 씨와 맞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 힘의 원리로 보자면 아무거나 군의 무모한 도발인 겁니다. 그런 아무거나 군의 모습을 보며 간단 씨도 가소롭게 생각하고요. 우리 집의 휴일이면 무한반복 흘러나오는 노랫말 가사 같은 대사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계속 나를 괴롭혀요.
엄마, 아빠가 아동 학대해요.
둘 사이가 이래도 휴일에 놀이 상대는 서로 뿐입니다. 저야 종일 종종거리며 밀린 집안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무거나 군이 놀이 상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유일한 놀이 상대가 간단 씨가 될 밖에는요. 휴일은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부자인 만큼 아침 식사 시간도 빠릅니다. 이른 아침을 해결한 후 점심시간까지 아무거나 군이 심심해할시간이넘쳐 납니다. 이 심심함을 이기기 위해 보드게임을 꺼냈습니다.
아빠 같이 놀아요.
싫은데.
아빠, 같이 해요.
싫어. 내가 왜!
엄마, 아빠가 나랑 안 놀아줘요.
급기야 아무거나 군은 설거지하는 저에게 호소합니다. 간단 씨의 눈과 저의 눈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챙챙챙' 날카로운 칼날이 요란한 소리로 부딪치고 있는 거죠. 제가 이겼습니다. 간단 씨는 마지못해 게임을 허락했습니다.
둘은 불안 불안하게 게임을 시작했고, 설거지를 끝낸 저는 시원하게 커피 한잔을 타 식탁에 앉았습니다. 읽을 책을 펼쳐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무거나 군의 "엄마~"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드게임의 진행이 아무거나 군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나 봅니다. 하지만 모른척해야 합니다. 아무거나 군이 해결할 일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게임하는 둘이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할 때마다 잊고 엄마를 찾는 아무거나 군입니다.그러니저도 점점 지쳐갑니다. 그래서주말이나 연휴만 되면 더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턱밑까지 차 오릅니다.
오늘도 아무거나 군의 눈에서는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몇 번인지 셈을 포기합니다. 아무거나 군도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뭐든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과정을 오늘도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감당해야 할 과정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 경계를선명하게 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