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램프 모양을 한 주황색 불이 계기판에 켜졌다. 동시에 달리는 차 속도에 뒤질세라 깜빡임이 빨라졌다.
평소의 나는 제일 저렴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만 주유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다. '빨리요. 급해요.' 하듯 재촉하는 주유 등의 깜빡임 만큼 내 마음도 두근두근 빠르게 뛴다.
달리는 도로 위 처음으로 눈에 띈 주유소로 차를 서둘러 넣고 주유기 앞에 멈췄다. 주유기의 금액이 상승할수록 막무가내로 두근대던 마음이 서서히 진정됐다. 그제야 주유소 주변을 두리번거릴 여유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렇게 발견한 자동 세차장. 단돈 4,000원이라는 문구가 내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며칠째 앞 차창에 누르끼레하게 들러붙은 새들의 분비물이 눈엣가시 같았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이른 시간이라 민폐는 아닐까 걱정이 앞서던 찰나 나보다 먼저 세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발견하고 미안함이 덜어지는 기분으로 입구에 차를 밀어 넣었다. 뒤에서 찬찬히 지켜보니 가격도 저렴한데 자동 세차 전 비누 솔질도 해준다.
‘역시 부지런한 새가 뭐라도 하나 더 먹는 다더니.나에게는 저렴하고 깔끔한 세차를 선물하는구나!’
스스로 뿌듯해하며 세차장 입구 솔질하는 분에게 궁금한 걸 몇 가지 묻고 특정 위치에 차를 넣었다. 그분의 지시대로 기아는 중립 발은 브레이크에서 떼고 사이드 미러도 살포시 접었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며 여유롭게 세차를 즐기기로 했다. 눈도 지그시 감았다.
“덜컥”
갑자기 차가 움직였다. 움직일 타이밍이 아직 아닌데. 솔질을 이렇게 빠르게 끝낼 수 있나 생각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소리가 입 밖으로 새 나왔다.
“어, 어, 어”
밀폐된 차 안에서 내 소리는 에코를 만들어 함께 세차 소리에 끌려 가볍게 묻혀버렸다. 앞에 차는 분명히 비누 솔질 먼저 했는데 내 차는 그냥 자동으로 컨베이어에 올려져 세차기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나는 순간 황당해 멍했다. 정신이 들자 곧바로 밑바닥에 가라앉은 울분이 토해졌다. 나 혼자 차 안에서 화를 삭이며 세차가 끝나면 다시 입구로 가서 따져 묻기로 스스로 단단한 결심을 했다. 평소의 나라면 엄두도 못 낼 결심이다. 하지만 그 결심은 세차기에서 빠져나와 큰 글씨 앞에 절규하게 했다. <일방통행>
결심은 그렇게 일방통행을 한참 달린 후 다시 되돌아가기엔 제법 와 버린 탓에 구깃구깃 구겨 마음의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우직한 사람이다.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는 그런 사람. 불만은 많은데 앞에서 표현하기는 무지 힘든 사람. 이런 내 성격만 탓하며 평소의 나처럼 일방통행 같은 마음을 숨기고 목적지인 도서관에 도착했다. 평일 대부분 나는 아무거나 군이 하교하는 시간까지 도서관에 머물며 책을 읽는다. 덕분에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나 좋다. 오늘은 세차 때문인지 책을 펼치자 마법처럼 피곤이 찾아왔다. 잠깐만 하는 사이 꿈까지 꿔가며 다디단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사이 시간은 오후를 자신 있게 가리키며 서둘러 아무거나 군을 데리러 가라며 재촉했다.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느라 점심도 챙기지 못했다.
허기진 배속이 아우성이다. 아무거나 군을 차에 태우자마자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먼저 물었다. 서로 고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다 김밥으로 마음이 모였다. 여기에 라면까지 끓이기로 합의를 이루고 나니 집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더 달콤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맛을 예상하며 행복하게 집에 도착했다. 누군가 세상 제일 무서운 것은 아는 맛이라고 했던데 정답이다. 아는 맛은 자꾸자꾸 나를 그때의 그 맛에 허우적거리게 한다.
집에 도착 후 서둘러 쌀을 씻고, 김밥 속재료를 만들고 아무거나 군의 재촉도 보태져 후다닥 준비를 끝냈다. 그렇게 라면과 김밥으로 차려낸 저녁상 앞에 오전의 서운함은 금방 끓인 라면의 열기에 사라져 자취를 순식간에 감췄다. 짭조름함과 아삭함이 공존하는 맛. 이게 바로 천상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