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합니다.
특별함으로 꽃 피우길 응원합니다.
실록은 햇빛에 조각조각 부서져 찬란한 초록빛으로 매력을 한껏 뽐냅니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가 바람에 살랑살랑 나무 끼는 모습이 무척이나 편안하게 다가 온 날입니다.
요즘 저는 편안한 날씨에도 어쩌지 못하는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툭툭 털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마다 타고난 기질, 성향, 신체 특성 등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태어나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러다 특정 연령이 되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만의 사회성이 길러지고 그 안에서 나름 생존을 위해 복닥 복닥하며 자연스럽게 모난 곳은 드러나지 않게 숨기고 엇비슷한 사람으로 스스로 맞춰 무리 속에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특별한 사람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특별함이 이상함이라는 오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며 그들은 예민한 사람으로 꼬리표가 붙어 주변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 저도 솔직히 그런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고 튀지 않기 위해 뭐든 so so 했습니다. 그런 제가 특별한 아무거나 군을 만나게 됐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극도로 예민한 아무거나 군은 저와 달라도 너무 달라 버거웠습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가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예민한 게 아니라 태어나보니 엄마 뱃속과 너무 다른 환경에 무서워 적응이 힘들었던 거였습니다. 말 그대로 적응이 느린 아이란 말이죠.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라는 말을 하나 봅니다. 아무거나 군을 통해 흑백만 존재한다 믿던 제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무거나 군이 벌써 4학년이 되었습니다. 영유아기 건강검진 때부터 항상 주의받았던 또래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사회성을 지적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부족한 사회성은 줄 곳 아무거나 군을 따라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인 저는 항상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살아갑니다.
얼마 전 아무거나 군의 학교에서 학교 폭력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친구로부터 받은 언어폭력을 바탕으로 포스터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해 스스로 슬픔에 깊이 빠져있는 아무거나 군을 답답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해결이 되지 않은 채 잊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겠죠.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알고 있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제 기준에 그만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며 아무거나 군을 채근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포스터를 보고 놀랐습니다. 마음이 튼튼한 아이로 자라길 누구보다 원했으면서 그런 제가 오히려 아무거나 군의 마음 따위에는 안중에 없었나 봅니다. 그의 특별함을 예민함이라 탓하지 않고 인정하겠습니다. 엄마가 타인의 시선에 당당하겠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특별함이 특별나게 꽃 피우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