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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l 15. 2023

고수되는 길

짠맛 나는 눈물 정도는 먹어봐야죠!

불꽃이 튑니다. 아주 잠깐이지만요. 그동안 와신상담하심정으로 두툼한 요 위에서 게임의 최약체인 저를 러닝 메이트 삼아 쉼 없이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드디어 간단 씨 앞에 게임 레벨 상승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입니다.


날카로움이라고는 찾기 힘든 순둥순둥한 눈. 날렵하고 싶지만 아직은 뭉툭한 코. 단단함 대신 보드랍고 말캉말캉한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름은 백전백패의 신화를 쓰신 아무거나 군입니다.


<체스 보드게임>

정사각형의 체스 게임판 위에 각자의 말들을 위치시킵니다. 체스 말은 총 6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폰, 룩, 비숍, 나이트, 퀸, 킹입니다. 각 말은 체스판 위에서 이동하는 각자의 방법으로 킹을 잡으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폰(8개) 한 번에 한 칸씩만 전진할 수 있고, 처음 이동할 때에는 앞으로 한 칸 또는 두 칸까지 이동이 가능.
룩(2개) 상하좌우 칸수 제한 없이 이동 가능.
비숍(2개) 대각선으로 칸수 제한 없이 이동 가능.
나이트(2개) 상하좌우 두 칸 이동한 후 좌 또는 우로 한 칸 이동.
퀸(1개) 상하좌우 대각선 어느 방향이든 칸수 제한 없는 강력한 말.
킹(1개) 체스 게임 시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하며 상하좌우 대각선 모든 방향으로 한 칸만 이동 가능합니다.


아, 아, 아, 잘 못 뒀어요. 제발! 한 번만요.
안 돼요. 뒀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게임에서 절대 양보란 있을 수 없는 간단 씨와 어떻게든 아빠를 이기고 싶은 아무거나 군이 체스 중입니다.


아무거나 군은 외동입니다. 필연적으로 외동은 놀이 대상이 형제일 수 없고 그 자리는 부모가 대신합니다. 성격상 과격하거나 활동량이 많은 놀이보다는 정적인 그림 그리기, 레고놀이 또는 보드게임 등을 좋아합니다.  

간단 씨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합니다. 아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거나 군의 이런 조금 특별한 성향을 제때 파악하고 인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아직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간단 씨는 조금 특별한 아무거나 군을 보편적인 남자아이로 단정하고 몸으로 놀아 주면 좋아할 거란 굳은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괜찮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름 적극적으로 몸으로만 놀아주려 했고 그럴수록 둘 사이는 나빠지기만 합니다. 그러는 동안 간단 씨도 서운함을 켜켜이 쌓아두었나 봅니다. 보드게임에서 절대 절대 승부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흐지부지하지 습니다. 확실히 아무거나 군보다 밥도 많이 먹었고 화장실도 더 다녔으니 게임의 승자는 불 보듯 뻔합니.


요즘 아무거나 군의 교실에서는 체스 게임이 대세인가 봅니다. 보드게임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겨 적극적으로 체스 구매를 요구해 샀습니다. 그 덕에 저도 생각지도 않게 아무거나 군으로부터 게임의 규칙을 배워 자연스럽게 상대가 됐고요. 처음은 게임의 하수인 제가 압도했지만 실력이 어디 가나요. 다음날부터 조금씩 밀리기 시작해 이제는 더 이상 아무거나 군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니 저도 아무거나 군도 게임의 재미가 떨어졌, 분명히 질 걸 알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위해 겁도 없이 아무거나 군은 간단 씨를 상대로 지목하게 니다.


처음은 간단 씨도 거부 의사를 짜증스럽게 표현합니다. 게임이 낯설기도 하고 이후 벌어질 아무거나 군의 생 떼가 싫어 미리 차단을 하는 겁니다. 상대를 정하면 끝까지 놓지 않는 아무거나 군을 거부하기가 어디 쉽나요. 그렇게 적과의 동침 아니 게임이 시작됩니다. 간단 씨도 처음은 생소한 게임에 적응하지 못해 두어 번 지다 그다음부터야 번번이 아무거나 군의 패색은 확실하고 짙었습니다. 패가 쌓일수록 아무거나 군의 내면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나 봅니다.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가 하더니 게임 막바지에 결국 화산이 터집니다. 분하고 서러움의 눈물을 꺼이꺼이 쏟아냅니다. 이때 간단 씨는 절대 달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더 아무거나 군을 다그칩니다. 게임에 지고 우는 아들이 아직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짜증부터 납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아무거나 군도 시간에 비례해 점점 맷집이 좋아졌나 봅니다.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부분이 생각하는 힘의 크기 아니겠습니까. 매도 자주 맞아봐야 맷집이 커지듯 생각의 힘도 자주 해봐야 커지는 겁니다. 아무거나 군은 매일 학교에서 친구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다 보니 생각하는 힘이 조금씩 커지면서 기량도 올라가는 게 보였습니다. 급기야 간단 씨와의 대결에서 조금씩 애교와 애떼(애교 섞인 떼) 섞어가며 게임을 하는 신기한 모습까지 연출합니다. 드디어 간단 씨를 이깁니다.


처음에는 간단 씨도 아주 당혹스러웠나 니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승리를 맛본 아무거나 군은 요즘 거칠게 없습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다 보니 제법 괜찮은 승을 챙깁니다. 여기다 게임 레벨 상승 못지않게 생각도 마음도 한 뼘씩 자라나고 있었나 봅니다. 이래서 인생은 부딪히면서 성장한다고 하는 건가요. 어제보다 확실히 단단해지고 큰 아무거나 군입니다.


고수가 되는 길은  역시나 순탄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습니다. 짭조름한 눈물 맛을 오래 자주 맛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길인가 봅니다. 여전히 그 길 위에 선 아무거나 군을 저는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고수의 길을 가는 그를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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