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서관 가는 길
드로잉마술 공연을 봤어요.
장마를 밀어낸 불볕더위가 아무거나 군의 여름 방학과 항께 시작됐습니다. 등교하지 않는 방학이지만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시작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아침을 차리고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작은 집이라 몇 걸음이면 청소기는 제 할 일을 끝냅니다. 방 몇 곳은 충분히 더 청소할 힘이 남은 청소기는 여전히 쌩쌩한데, 그에 비해 비 오듯 땀을 흘린 저는 기진맥진했습니다. 이럴 때는 물이 최고입니다. 시원한 보리차 한 사발 마신 후 뜨뜻미지근한 물로 샤워까지 끝내면 방전된 에너지는 곧바로 회복됩니다.
방학이라고 집에서 덥다며 에어컨만 믿고 켜다가는 어느 틈에 커다란 몸집을 만든 전기세 앞에서 두려움의 눈물을 쏙 뺄지 모릅니다. 샤워도 했고 스멀스멀 다시 더운 기운이 저를 지배하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저와 아무거나 군은 더위를 피해 재미난 공연이 예약되어 있는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어릴 때는 어둠을 상당히 무서워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인형극이나 뮤지컬 등을 관람할 때도 너무 울어 선생님과 함께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좋아하는 또래 친구들과 여러 번 영화관이나 뮤지컬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둠과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아무거나 군의 마음에 두려움의 크기만 키웠습니다.
다양한 체험을 마음껏 해주고픈 엄마의 마음은 어둠 앞에 기어코 무릎 꿇으며 좌절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거나 군의 어린 시절은 문화. 예술. 오락이 풍선의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채울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저도 김 빠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좌절만 있으면 재미가 없죠. 제가 실망에 지쳐갈 때쯤 아주 시의적절하게 우리 지역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 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도서관 공연을 관람하던 날 빼곡히 꽂힌 장서가 포근하고 넓은 품처럼 우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어둠은 없고 대신 밝은 조명이 무대를 따뜻하게 비췄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거나 군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장이었습니다. 그 덕에 어린 시절 아무거나 군에게 공연 관람은 경험할 수 없는 어둠 같았는데 도서관을 통해 밝고 따뜻함이 어느샌가 곁에 바짝 당겨 앉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역시나 이번 여름방학도 다채로이 준비된 특별 공연을 즐길 마음을 담아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방학을 맞아 어린 친구들과 보호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첫 공연은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무거나 군에게 딱일 거란 생각에 드로잉마술 공연을 선택했습니다. 공연자가 무대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며 마술쇼도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익살맞은 연기와 그림 실력은 모두를 환호하게 했습니다. 제 옆에 앉은 아무거나 군을 흘낏 곁눈질하니 얼굴에 가득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 덕에 저도 신나고 재밌는 공연을 제대로 즐겼습니다
아무거나 군과 저의 방학은 이렇게 신나게 시작되었습니다. 시원하고 유익한 공간에서 더위는 잠시 잊고 신나는 공연과 책이 있는 최고의 피서지. 우리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