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불 앞에 섰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제가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더운 여름 가스불 앞에서 끼니를 차려 낸다는 것은 불쑥불쑥 솟구치는 내면의 열기와도 맞닥뜨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제 마음과는 별개로 아무거나 군에게 쓴소리를 쏟아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풀리기 쉬운 이성의 끈을 단속할 필요가 더 절실해지는 기간입니다.
아무거나 군이 하교 후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엄마, 배고파요."였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맛있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 짧은 아이는 다양하게 제공되는 학교 급식이 밀림 속 정글 같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맨밥만 먹거나 깍두기가 있으면 더 좋은 아주 소심한 급식을 즐기는 아이에게는요. 오죽했으면 조리사님의 걱정 어린 "채식하는 거야?" "양이 너무 적은데" 등 의도치 않은 곳에서 집중 관심을 받는 아무거나 군이 됐습니다.
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 아무거나 군이 급식에서 먹었다면 소떡이야기를 했습니다. 맛있었다며 또 먹고 싶다 는 거였습니다. 당연 소시지는 빼고 자신이 좋아하는 떡으로만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했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재료에 여러 가지가 섞이는 걸 싫어합니다. 떡볶이도 어묵은 넣지 않은 오직 떡으로만 만든 걸 좋아합니다. 과일. 채소식을 하기 전의 저라면 소시지는 제가 떡은 아무거나 군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을 겁니다. 이제는 제 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독소를 찾아 버리고 있는 중이라 소시지의 유혹은 아쉽지만 과감히 버렸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밀떡보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좋은 쌀떡을 선호합니다. 시장의 떡집에서 당일 뽑은 따뜻하고 말캉말캉한 떡볶이 떡을 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냥 먹어도 맛있는 떡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앞뒤로 구워내면 쫀득하고 바싹하니 맛은 훨씬 더 극대화됩니다. 여기에 새콤달콤 매콤한 소스까지 끼얹어 주면 군침이 재바르게 마중 나옵니다.
무더운 여름 간단하고 맛있는 떡 구위로 즐거운 방학을 배고프지 않게 보낼 예정인 아무거나 군입니다. 저도 시장에서 따뜻한 떡만 사면 손이 훨씬 덜 가는 한 끼라 볼맨소리는 쏙 들어갔습니다. 서로의 기호에 맞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며 보내는 여름. 더위도 덜 짜증스럽게 느껴질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저와 아무거나 군은 8월의 더위와도 잘 지내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