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보드랍게 쪄진 호박잎을 즐길 계절요.
얼마 전 마트에서 제 눈에 반짝반짝 빛나던 호박잎과 그 옆의 머위잎을 한 묶음씩 샀습니다. 저는 보드랍게 쪄진 호박잎을 좋아합니다. 같은 집에 사는 간단 씨는 쌉싸름한 머위잎을 좋아하고요. 솔직히 호박잎만 카트에 담았다 되돌아 가 머위잎도 담았습니다. 나름 친절하고 배려심이 몸에 밴 저는 제 입맛만 생각할 수 없어 둘을 카트에 담아 샀습니다.
요즘 낮 최고기온이 35℃가 육박하는 때 이른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그냥 잠깐만 몸을 꼼지락거려도 등줄기로 땀이 깊은 계곡물을 만듭니다. 이런 날 주방에서 요리한다는 건 찌뿌둥한 몸의 피곤을 덜어내기 위해 부러 찜질방을 찾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 주방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심정입니다. 호박잎과 머위잎은 사 온 그날 요리해 먹어야 맛이 더 좋은데 며칠째 냉장고의 시원한 냉기만 믿고 있었더니 시들시들 생명을 다해가는 모습을 차마 더 이상 모른척할 수 없어 꺼내 다듬었습니다.
우선 호박잎은 잎의 뒤쪽에 까칠까칠한 잔털이 많아 대를 꺾어 껍질을 한풀 벗겨내야 합니다. 그래야 쪄냈을 때 입안에서 시비 붙지 않고 서로가 보들보들 친해져 목 넘김이 좋거든요. 머위잎은 그닥 손질이 필요치 않아 물커진 부분만 깨끗하게 다듬었습니다.
이제 냄비 두 개를 준비합니다. 하나는 호박잎을 찌고 나머지는 머위잎을 삶을 겁니다. 냄비에 물을 채우고 채반을 올려 가스 불을 켰습니다. 냄비 뚜껑 틈으로 뿌연 김이 새어 나오자 손질해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 호박잎을 희끄무레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채반 위에 가지런히 놓아 뚜껑을 덮었습니다. 호박잎은 오래 찔수록 잎이 더 부드러워 쌈을 싸 먹을 때 까칠한 느낌이 없어 입안에서 겉돌지 않고 목으로 잘 넘어갑니다. 머위잎은 냄비의 물이 팔팔 끓을 때 소금 한 자밤 넣고 머위 대부터 넣어 충분히 익힙니다. 마지막으로 잎까지 완전히 입수시켜 삶아 줍니다. 머위는 특유의 쌉싸름함이 너무 강해 쓰게 느껴져 먹기에 거북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 딱 먹기 좋은 쌉싸름함을 위해 오래 충분히 삶아 줍니다. 삶은 머위잎은 여러 차례 차가운 물로 바꿔가며 씻어주고 오랜 시간 담가두면 쓴맛이 제법 줄어듭니다. 때 이른 더위로 땀을 유난히 많이 흘린 날 입안이 꺼끌꺼끌해 뭘 먹어도 성에 차지 않을 때 머위 특유의 쌉싸름함이 떠나가는 입맛을 붙들고 다시 돌아올 겁니다.
주방의 가스 불 위에서 호박잎과 머위잎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쪄지고 삶아지고 있습니다. 그 옆에서 저는 온몸으로 고스란히 뜨거움을 참아내며 호박잎과 머위잎에 찰떡궁합인 매콤 달콤한 양념장과 고소하고 짭조름한 쌈장을 만듭니다. 머릿밑에서 시작된 땀은 이미 온몸과 영혼까지 찰방찰방하게 적셔놓았습니다. 제가 직접 요리를 하기 전엔 전혀 몰랐습니다. 요리가 이렇게나 뜨거운 순간순간으로 밀어 넣는다는 걸 말입니다.
어릴 적 엄마는 항상 저에게 호박잎을 따오라고 시켰습니다. 남새밭에 우후죽순처럼 줄기가 사방으로 뻗은 호박잎을 따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혹시 뱀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웽웽 정신없이 귓가에서 울어대는 까맣고 통통 살 오른 하얀 줄무늬를 가진 모기떼의 습격에서는 안전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요. 그렇게 겁먹고 용기 내 따온 호박잎의 손질도 제 몫이라 엄마의 심부름이 늘 달갑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고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뜨겁고 숨 막히는 비닐하우스에서 종일 일하고 돌아와 이미 몸과 마음이 푹 익어 지칠 대로 지친 엄마가 다시 뜨거운 불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지 말입니다. 호박잎을 쪄내고 양념장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내 우리 남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편안한 웃음을 짓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마 그때 엄마는 종일 힘들었던 피곤을 뜨거운 불에 다 태우고 남매의 오물오물 복스러운 입을 보며 내일의 희망이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날 저녁상에 보드랍게 쪄진 호박잎과 쌉싸름한 머위로 차려냈습니다. 호박잎을 한 장 손바닥에 들고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술, 매콤 달콤한 양념장까지 올려 호박잎을 감싸 입 안으로 넣었습니다. 세상 가장 뜨거운 가스 불과 제가 만들어 낸 매콤 달콤한 양념장이 어우러져 보드라움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우자 행복이 온몸 가득 차올랐습니다. 가장 뜨겁지만 가장 부드럽고 가장 행복한 시간 엄마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지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