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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08. 2023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랐고 자란다.

엄마가 특별한 게 아니야!

이제 곧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은 서울나들이를 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찍 경제활동을 시작했지만 대부분 어머니의 병원비로 쓰였습니다. 저에게 가난은 오래 깊이 자리 잡고 떠날 줄 모르던 불청객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에 비해 부모님과의 만남은 짧고도 짧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에게서 적잖은 빚을 떠안았습니다. 직장 생활하며 조금씩 모은 적금과 퇴직금으로 정리 후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돈은 아쉬웠고 가난한 대학생활에 낭만도 쉬이 스며들지 못했습니다. 졸업 후 곧바로 취업에 성공했지만 몇 년간 대출한 학자금 상환에 빠듯했습니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여유는 사치 같아 항상 종종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불안한 삶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불완전한 제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간단 씨는 늘 바빴습니다. 일이 많아서 술 마실 약속이 잦았어, 다방면으로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육아에는 도움의 손길을 보태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 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대부분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일찍 부모님과 이별해 혼자였고, 자매도 없어 요즘 말로 독박 육아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눈물, 콧물, 영혼까지 빼앗겼습니다.


그 시간은 고스란히 제 안에서 섭섭함으로 때로는 억울함으로 크기를 키웠습니다. 세상에 홀로 고군분투하던 저의 삶은 외로움이 함께였습니다. 외로움이 점점 우울의 늪으로 몰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조금은 특별한 아들 덕에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알지 못하는 주변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 보태졌습니다. 솔직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는 작지만 따뜻한 손길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을 벗어난 지금에야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버티게 한 힘은 사랑스러운 아무거나 군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게 해 준 간단 씨, 주변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라 가능했다는 걸 뒤늦게야 인정합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는 기분은 마치 두더지 집을 방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딛고 선 단단한 땅 위에서 점점 멀어져 깊고 깊은 곳에 집을 만든 두더지에게 가는 길은 불안이 함께 했습니다. 솔직히 땅 위에서 멀어질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배가됐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과 닿아 있는 듯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스스로 안위를 챙기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사치라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과거의 저처럼요.


목적지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습니다.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시 제법 가파르고 높은 계단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날은 서울 관광의 마지막 날이었고 늦은 저녁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며칠 숙소에 모셔뒀던 크고 무거운 가방을 다시 튼튼한 제 양어깨에 위로 메었습니다. 둘러멘 가방이 앞으로 나아가는 제 발을 묵직하게 붙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 계단 앞에 주춤하며 큰 숨을 한 번 더 뱉어 낼 밖에요. 그때 발견했습니다. 힘겹게 유모차를 접고 있는 아이 엄마를요. 옆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갓 돌을 지난 듯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메고 있는 것만큼이나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양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그 가방에 든 물건의 종류와 무게가 머릿속에 그려져 더 눈이 갔습니다. 두 손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버거워 보이는 큰 유모차를 접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가 위험할까 불안해하는 마음과 그 아이를 향한 다정함이 포개져 아이 손을 그러쥐고 있었습니다.


계단 앞에 한숨 쉬며 잠시 멈추고 있던 저는 그 관경을 쳐다보며 주변을 살폈습니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내밀어질 거란 기대에서요.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쳤지만 전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저의 무거운 발걸음이 뚜벅뚜벅 그곳으로 걸음 했습니다.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깊이 고개 숙여 유모차를 접던 그녀는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 빠르게 고개 들었습니다. 저의 두 손으로 유모차를 들어 올리며 아프리카의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 순간 저는 마을에 사는 주민이 됐습니다. 저의 작지만 다정한 손길에 그녀는 과하게 미안해했고 고마워했습니다. 계단 위로 유모차를 옮겨 놓고 제 길을 가는데 아무거나 군이 제 앞으로 불쑥 들어왔습니다.


엄마, 대단해요. 감동이에요.
엄마도 힘들 텐데.


다정한 말로 저를 부끄럽게 하는 아무거나 군을 품에 안으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너를 키우면서 많은 사람의 다정한 손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어. 그 마음을 조금 나눴을 뿐이야.


저의 작은 행동으로 아무거나 군은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알아챘을 거라 믿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느낀 다정함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길 희망합니다. 육아는 이렇게 아이만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연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이 지치고 힘든 여러분들에게 저의 따뜻함을 선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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