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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12. 2023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즐기겠습니다.

밤샘은 뭐! 잠만 잤습니다. 태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  아침, 저녁으로 전보다는 선선한 기운이 놓였습니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뜨겁고 강렬하지만 이게 어딘가 싶습니다.


지금 저는 도서관에 있습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라 열대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요즘 제가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서 <밤샘북캉스>를 기획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을 친구 삼아 책을 읽고 보드게임을 즐기며 야금야금 간식도 먹고 밤을 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뜨거운 태양과 함께 서울의 고궁을 건닐 때 sns에올라 온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선착순 모집이라는 문구에 가던 길을 멈추고 곧바로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마감전에 접수해 <밤샘북캉스> 날인 오늘 이렇게 시원하게 있습니다.


접수해야 체험 가능한 프로그램도 있어 함께 신청했습니다. 체험명 <아크릴 무드등 만들기>입니다. "아크릴 무드등은 투명하고 단단한 아크릴 판에 다양한 디자인을 철필이나 얇은 드릴을 사용해 새겨 넣어 만드는 무드등을 말합니다."


대부분 도안을 베껴 아크릴  판에 새겨 만듭니다. 강사님은 베끼는 것보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과 글귀를 새겨 넣어 만드길 권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 도안을 베껴 아크릴 판에 철필로 새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그렸습니다. 스무 명의 참가자 중 저와 아무거나 군만 도안을 직접 그렸습니다. 밑그림은  연필로 대충 그리면 됐습니다. 저는 상상해서 그리는 그림은 못하지만 보고 그리는 건 제법 합니다. 그래서 처음 참가 신청자를 모집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만든 홍보 전단지의 그림을 선택해 그렸습니다. 아무거나 군과 <밤샘북캉스>추억을 아크릴 판에 새긴다는 느낌으로 말입니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참가했습니다. 그런 제 앞자리에 초등 아이 둘만 앉았습니다. 아마 신청 때 빈자리가 충분하지 않아서겠죠.

우와! 정말 잘 그리신다.

앞에 앉은 여자 아이 둘이 뒤를 돌아 제 그림을 보고 한 말입니다. 강사님도 그 소리에 저에게 오셨고 제 그림을 칭찬을 습니다. 그러자 일제히 모든 눈동자가 저를 향했습니다. 체질상 주목받는 거 안 좋아합니다. 대놓고 부끄럽을 탑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인 밑그림이고 완성까지 가야 할 험난한 길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림을 배우셨나 봐요?

강사님이 물었습니다.

울 엄마는 ctrl+v 좀 하세요.

아무거나 군의 대답에 강사님은 웃으며 초보지만 잘 그렸다며 작품을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주눅까지 더 얹어졌습니다. 가벼운 체험 수업에 작품이라니 말입니다.


철필은 제법 무게감이 있고 한 번만 삐끗해도 아크릴 판에 그릴 그림이 제 생각과 별개로 지저분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했습니다. 가볍고 익숙한 연필에서 묵직한 철필은 제가 원하는 방향을 요리조리 피해 가려고만 해 그걸 막기 위해 손에 힘이 과하게 필요했습니다.


역시나 완성은 엉성합니다. 밑그림의 기대는 철필의 무게감에 눌렸습니다. 혼자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제 감정과는 별개로 앞자리 아이들은 또 너무 잘했다며 호들갑입니다. 여기에 강사님까지 한몫 얹습니다. 완성된 제 무드등을 수강생 모두가 볼 수 있게 앞으로 가져 나가 칭찬했습니다. 형광등은 소등하고 무드등을 점등했습니다. 정말 어디로 숨고 싶었습니다.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아무거나 군이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즐기세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아무거나 군의 말에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습니다. 모두들 진심으로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게 칭찬을 받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도서관에서 특별한 <밤샘북캉스>를 통해 저의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하나 더 추가해 퇴실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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