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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21. 2023

도시락 싸는 걸 잠시 쉬며...

나, 정말 요리에 진심이었구나.

새초롬 냉기가 불쑥 일상으로 파고든 날. 이렇게 가을이 사라지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일하며 생긴 불편한 마음과 합쳐져 괜스레 우울해진 날이었다.


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가 새장에 갇혀 퍼덕이는 날갯짓을 잃어 가는 기분이 과연 이런 게 아닐까. 내 안에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다 이제 시간 안에 나를 가둬 생활하자니 여간 갑갑하고 복잡해진 마음이다.


일을 한다는 건. 돈을 지불하지 않고 지급받으며 생활한다는 건, 그만큼의 내 에너지를 지불한다는 것이리라. 일이 힘든 것이라기보다 시간에 묶여있는 나를 마주하기가 힘이 든 요즘이다.


이런 내 마음이 핸드폰의 갤러리 속에 전시된 도시락 메뉴를 관람하게 했다. 일을 하면서 점심 도시락 싸는 일도 잠시 쉬고 있어 그동안 도시락 싸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얼마나 요리에 진심이었는지 알게 된 감사한 시간이다.


나는 풋내 나는 음식을 싫어한다. 채소와 과일들은 약간씩 특유의 풋내를 가지고 있다. 유독 그 맛이 강해 입안에서 오래 머물 때는 통통한 혀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길을 떡하니 막아선다. 그럴수록 음식은 더 오래 입 안에 머물 수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얼굴로 오만상이 그려진다. 그것 중 하나가 청경채다.


청경챙의 풋내를 없애기 위해 우선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 물을 끓여 살짝 데친다. 데친 청경채는 바로 차가운 물에 담가 씻어내 물기를 제거해 달군 팬에 마늘과 파를 노릇하게 볶아 기름을 데친 청경채를 넣어 향긋한 기름옷을 입혀 준다. 윤기 나는 기름이 표면을 감싼 모습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여기에 만들어 둔 고추다대기와 고춧가루, 굴소스로 간을 해 한번 더 볶아내 따뜻한 밥 위에 올리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크기부터 남다른 팽이버섯 두 개를 모양대로 잘라 팬에 들기름을 충분히 둘러 노릇노릇하게 구워내 밥 위로 올린다. 여기에 계란프라이 하나 떡하니 올리니 꽃이 다. 비주얼이 그럴싸해 먹기에도 아깝다.

 

상추 장과 콩나물 무침이 냉장고에서 길을 잃은 날. 나는 모두를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비빔밥을 생각했다. 여기에 팽이버섯도 하나 데쳐 나물로 만들고 애호박도 볶았다. 멸치볶음도 듬뿍 올려 씹는 맛을 배가 시키니 이건 뭐, 환상의 조합이다.


당분간 이 행복들과 잠시 거리 두기를 하며, 곧 다시 나만을 위한 요리를 시작할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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