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뚱 Oct 25. 2023

이게 뭐라고!

과정의 소중함을 자꾸 잊는다.

밤은 나의 일상을 어둠으로 숨겼다 어스름한 새벽에야 천천히 내놓는다.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든 까만 어둠을 품은 창을 벗겨내자 간밤에 밖에서 떨고 있었던 공기가 차갑게 식어 들이닥쳤다.


평소보다 늦은 기상. 그래서일까 전날보다 확실히 더 냉랭했다. 예고 없이 콧속을 비집고 들어온 찬 공기 탓에 콧물은 주책없이 흘렀다.


토요일. 주말은 평일보다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 있는 특권이 있으나 포기한 지 두 달 여가  됐다. 한 시간을 살짝 넘겨 최적의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가야 하므로.


늦은 만큼 새벽 책 읽기 시간을 줄였아침은 더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는 아들을 깨워  길 떠날 채비를 시켰다. 그림 그리기가 무척 즐겁고 재미있다는 아들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현재 꾸고 있다. 그 꿈을 향해 가는 걸음마로 타 지역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있어 데리고 다닌다. 무료 수업이지만 나름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다. 아들에게는 그 시간이 제법 힘들만한데도 오히려 재미있다며 즐거워해 나 역시도 힘들기보다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수업은 두 시간가량 진행된다. 아들의 웹툰 수업이 끝나길 무료하게 기다리기보다 나도 들을 수 있는 성인 강좌가 있어 신청해 계획에도 없던 목공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의 대부분은 톱질과 질이다. 곧은 마음과 다르게 톱질은 삐뚤빼뚤하고 정교함과 꼼꼼함이 필요한 끌질덤벙대기 일쑤인 나에게는 소질에 맞지 않나 보다. 

초보티가 어깨에 붙어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톱질을 해 몇 주 동안 통증으로 밤잠 설쳤다.  그래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결석 없이 바지런히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엉성하지만 조금씩 완성품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니 내 안에는 뿌듯함이 끓어 올라 혼자 미소 짓기도 여러 번이다.


난 토요일, 목공 선생님의 생각만큼 수강생들이 더디게 따라오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모든 과정이 끝이 나면 모든 수강생들의 작품 전시와 공연으로 축제를 연다고 했다. 그때까지 완성품이 몇 명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선생님은 부족한 부분을 자신과 보조강사분이 돕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반듯한 톱질과 정교한 끌질이 수업에 자주 빠진 수강생들 나무에 입혀졌다. 힐끗 쳐다만 봐도 나의 나무와는 달랐다. 갑자기 시샘이 났다. 부지런히 수업을 따라가려 노력했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럼 나도 반듯하고 정교한 손길이 닿아 그럴싸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겨 수업 시간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이게 뭐라고! 스스로 마음을 힘들게 하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툴지만 새로운 경험에 설렜고 반듯하지는 않지만 모든 과정에 나의 노력과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에 뿌듯했다.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더 이상 욕심을 품을 일이 아니다. 소중한 과정에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므로.





작가의 이전글 도시락 싸는 걸 잠시 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