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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07. 2023

네 덕분에 엄마도 소풍 갔어.

행복한 일상

하늘은 가을을 닮아 평소보다 더 높았고 깨끗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어. 너의 현장 체험 학습일에 딱 맞는 맑은 날이라서.


엄마는 새벽에 눈이 떠졌어. 너무 이른 새벽 1시쯤. 이후로는 도통 잠이 오질 않아 그냥 깨어 있었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날 김밥 재료를 손질해 냉장고에 넣다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져 평소보다 이른 잠자리에 들었던 게 문제였을까. 솔직히 이보다 앞서 잠자리에 들며 덜컥 겁이 났었는데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혹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할까 봐서. 너에게 미리 주문받은 김밥이랑 햄말이 도시락을 못 싸줄까 봐서. 혹시나 비라도 내릴까 봐서.


엄마 어릴 땐 소풍이었고 너 때는 현장 체험 학습이라 부르는 게 달라졌네. 엄마가 어릴 때는 소풍날에 비가 올까 노심초사했어. 일 년 중 단 두 번(봄과 가을소풍)만 잡곡밥 대신 하얀 쌀밥이 듬뿍 들어간 김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 그러니 비라도 와 소풍이 취소되면 김밥은 구경도 할 수도 없으니 당연했겠지. 아마도 소풍날정해지면서부터 어린 엄마 마음은 가벼운 구름처럼 둥둥 들떠있고, 입에서는 절대 오면 안 되는 비를 거부하는 노래를 주문처럼 불렀으니 그랬겠지. 그만큼 엄마에게 소풍은 아니 현장 체험 학습은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야.


이왕 일어났으니 오지 않는 잠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책을 조금 읽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깜깜한 새벽에 전날 준비한 재료를 볶고 구웠어. 시간이 충분하니 네가 주문한 것 외에도 한 가지 더 만들어 도시락에 담았어. 싸고 보니 점심에 맛있게 먹을 네 생각이 나면서 마구마구 행복해지는 거야.


예쁘고 단정한 것만 골라 너의 도시락에 담고 엄마의 점심 도시락으로 꼬투리와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들을 담았어. 일주일에 한 번씩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날이니 엄마도 너처럼 소풍 하는 기분이었어. 산속을 맨발로 걷고 먹는 도시락은 생각만 해도 행복해졌어.

맨발에 닿는 차가운 황토와 숲이 만든 그늘이 좀 더 써늘하게 해 가을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날 것 같았어. 하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사이로 비치는 태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 그렇게 쉬었다 하며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쁘더라. 아마 너도 현장 체험 학습장에서 엄마랑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을까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


한 시간을 훌쩍 넘겨 황톳길을 걷고 기분 좋게 산을 내려와 엄마가 자주 가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펼쳤어. 너는 어느 자리에서 친구 누구랑 먹고 있을까 궁금해지더라. 도시락은 맛있게 먹었니. 엄마는 맛있었어. 너랑 같은 곳은 아니지만 같은 도시락을 나눠 먹는 듯했고 함께 소풍 나온 것 같았어. 네 덕분에 엄마도 소풍날 같이 행복한 시간 보냈어. 조금 있다 우리 만나 서로의 소풍 이야기를 나누자. 


행복한 하루에 감사하며 너를 기다리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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