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촘촘하게 거실을 가득 메운 새벽. 전날과 확연히 다르게느껴졌다. 하룻밤사이 따뜻했던 가을의 다정함을 싹 지우고 차갑게 식은 겨울이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이랄까. 서둘러 보일러를 가동해 공기를 데웠다.
이날은 집 근처 저수지로 지인이 활동하고 있는 모임에 행사가 있다며 초대받아 아들과 함께 갔다. 가을에 유독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예쁘게 단풍 든 나무들이 일렁이는 물과 어우러져은은한아름다움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그러나아쉽게도 그동안 따뜻했던날씨 탓에 단풍을 볼 수는 없었다.
행사의 취지인 '지구사랑'.저수지로 오르는 길에 쓰레기를 줍고 저수지 안쪽 넓은 잔디광장에서 준비한 행사를진행했다.그렇게 나와 아들은 차에 넣어둔 집게를 챙겨 쌀쌀한 공기쯤 가볍게 가로저으며 저수지를 오르는 우리만의 즐거운 쓰레기 줍기 놀이를 시작했다.
다행히도쓰레기가 많지 않아 기분은 더 좋았고 목적지에 도착해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제기차기, 과녁에 손가락 화살 쏘기, 종이컵에 연결된 실에 매달린 공 넣기 등 가벼운 게임도 진행됐다.
지금이야 살이 불어 운동신경이랄 것도 없지만 '라떼는 말이야' 왕년에는 제법 날렵했던 나다.뒤뚱한 몸으로는 역시나 생각만큼 제기차기가 되지 않았다. 밀림의 왕 사자가 없으면 여우가 왕노릇한다지 않던가. 이날 모인 사람들 중 뛰어나게 운동 신경이 좋은 사람이 없어 겨우 10번의 발놀림에 다른 사람들 입에서"와우" 소리가 터졌다. 잠깐사이 부끄러움과 의문이 내 얼굴 위로 번지며 사라졌다.
모든 게임이 끝이 나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점심을 각자 들고 간 빈 도시락통에 담아 나눠 먹을 때 누군가 나에게 뜻밖의 질문을 했다.
어떻게 모든 게임을 그렇게 잘해요?
의문이 든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뭐든 잘하는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날릴 게임에서 나는 과한 칭찬과 부러움을 받았다.
전날 목공수업에서 함께 수업 듣는 남성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 수업에서 금손입니다. 잘 만들었어요.
정말 나만 모르고 있었던 숨은 보석이 내 안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내 생각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곧바로 꿈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깨어나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