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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Nov 21. 2023

자주 잊는 나

하지만 항상 내 주위에 존재하는 친절.

어디에 숨었을까. 쉬이 찾아지지 않던 가을을 "못 찾겠다 꾀꼬리"로 불러내려는 순간 불쑥 나타난 겨울. 늦 봄 같은 가을을 보내며 차가운 겨울이 이렇게나 반갑기는 처음다.


하교한 아들을 태워 도서관으로 가 책을 읽었고, 필요한 책 몇 권도 대출해 차에 어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도 알 수 없는 허전함이 함께였다. 그 순간 걸려 온 전화. 내비게이션에 띄워진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울컥울컥 소용돌이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이날 일 하는 내내 버석버석한 소리가 입술이 닿을 때마다 새어 나왔다. 물 한 모금이면 쉽게 사라지게 할 그 소리는 점심시간에야 겨우 입으로 물을 벌컥벌컥 밀어 넣고서야 잠잠해졌다. 평소였다면 도서관에 앉아 글쓰기 동아리 모임을 마무리할 시간이라는 걸 식당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 보고야 알아챘다. 그 순간 아르바이트를 허락한 그 자리의 내가 너무 싫었다. 이런 마음에 끼니때마다 꿀맛 같던 밥 맛도 까칠한 혀끝에서 길을 잃었다.


애써 감정을 숨기고 목소리는 조금 더 밝고 경쾌하게 바꾸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일하기 전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모여 글쓰기 동아리 활동을 하던 날이었고 함께 활동하던 그녀의 전화였다. 그녀는 새롭게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는 이야기와 수업의 글제를 나에게 이야기하며 함께 써 보자고 했다. 그리고 동아리 모임에 내 빈자리가 생각보다 너무 크다는 말. 내 글을 당신들이 대신 읽으며 없어도 있는 듯 한 기분으로 모임을 진행했다는 말. 새해에는 꼭 얼굴 보며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 등. 모든 말들이 하루종일 우울했던 내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며 외면한 순간들이 끌어올려져 전화를 끊자마자 휴지를 찾아 눈물을 닦았다.

'아, 나 정말 도서관에서 그녀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구나!'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마치 향수병이라도 앓듯 몸은 일터지만 마음은 도서관으로 뜀박질하고 있다. 이런 내 안의 분주한 달리기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조급해하지 말라고,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의 다정한 말들이 우후죽순 나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그녀는 다정한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다. 내가 쓴 요리하는 글을 읽고 그녀의 친정 부모님이 직접 짠 고소한 참기름과 다진 마늘, 말린 뽕잎을 건네며 자신보다 요리를 즐기는 나에게 더 쓰임이 많을 듯하다며 다정한 말로 받는 손이 부끄럽지 않게 챙겨줬다. 그 마음은 마치 물에 잉크가 한 방울이 떨어져 스며들듯 내 마음에 따뜻하고 조용하게 스며들었다.


이렇듯 자주 잊고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라 단정 짓는 나를 돌아본다. 항상 주변 사람들의 다정한 태도와 챙김이 있는데도 작은 불편한 마음들이 자주 그걸 걷어찬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다정한 사람들이 따뜻하게 나를 감싸오니 추운 겨울도 반가울밖에. 잊지 말자! 내 주위에 항시 대기 중인 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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