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째깍째깍 초침이 분주하게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초침이 힘차게 분침을 밀고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있던 시침도 화답하듯 묵직하게 한걸음 내딛는다. 유려하게 원호를 그리며 초침과 분침이 숫자 12, 시침이 숫자 9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빠르게 노트북과 읽을 책을 챙겨 자동차에서 내린다.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나의 놀이터이자 서재인 도서관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자 문 틈으로 먼저 도우미 로봇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밝은 조명이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아들을 등교시키고 하교까지 기다리는 장소로 학교와 멀지 않은 도서관에 정박한다. 내가 주로 머무는 곳은 책섬이다. 이름에서 풍기듯 이곳은 마치 나 홀로 무인도에 잠시 표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곳으로 이만한 곳이 없다. 그날그날 읽는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 중 유독 마음이 끌리는 책은 바로 검색대에서 검색해 읽거나 대출할 수도 있다.
우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 자리 잡아 가져간 책과 노트북을 가지런히 책상에 올려 정리한다. 다음으로 텀블러에 미지근한 정수물을 채우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기 전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해 본다. 아침에 울컥 올라온 짜증을 끝내 참아내지 못하고 아들에게 쏟아 낸 순간에 대한 후회의 소리와 전날 무심히 던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상처 입은 마음이 아파하는 소리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매일 나에게 하소연하는 내 안의 소리들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부서지거나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성난 파도 같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 잔잔한 물결로 만드는 순간이 나에게는 글 쓰는 시간이다.
예전의 나는 복잡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수다스럽게 얘기했으나 공허한 마음이 계속 따라붙어 불편해 그것도 멈췄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끄러운 카페에서 친구와 마주 앉아 수다 떨던 시간이 지금은 나와 내가 조용한 도서관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순간으로 대체됐다.
글쓰기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비난도 힐난도 하지 않는다. 미처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많은 감정들을 알아주고 인정하며 온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 곪아 있던 상처들이 낫기 위해 버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존재한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자생적으로 내 마음을 치유할 거라 믿으며 오늘도 허허벌판 같은 내 마음에 흙을 돋우고 물 길도 파내 고랑과 이랑을 만든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마음의 소리에서 나름 신중하게 튼튼하고 씨알 좋은 단어를 골라 가지런히 심어 본다. 여기에 단어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잡초 같은 조사를 뽑아내 손보고 문장을 만든다. 비유, 수사, 대구법 등 문장이 돋보일 수 있도록 거름을 줘 튼튼하게 문단이 설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텃밭에 앉아 나와 이야기하듯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