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가지에 애처롭게 매달렸던 나뭇잎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앉던 날. 하얀 병원복을 입고 나와 그의 사이를 가르는 자동문 안으로 사라지던 뒷모습이 너무도 작고 쓸쓸해 보였다. 문이 닫히고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그가사라진 후 끝내는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쩍'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서러움이 솟구쳤다.
그는 지난밤 고열로 힘들어했다. 해열제를 먹고 이내 식은 몸은 추위와 사투를 벌였다. 베개와 이불이 금세 축축한 땀을 흡수해차갑게 식은 몸을 에워싸며 찝찝한 얼굴을 한 그를 다시 잠에 빠져들게 했다.그의몸은다시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난 후라 한결 가벼웠고해열제의 효과로 살짝 미열만 남아뭐라도 할 수 있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나 보다. 차갑고 끈적하게 식은 몸을 따뜻한 물로 말끔히 씻어낸 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꼭, 병원에서 링거 맞아요.
최근 계속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찾은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고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도 이상 없던 고혈압만 찾아냈을 뿐이다. 혈압약을 복용한 지 이주차. 한결 몸이 가볍다며 정말 혈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며 겸연쩍게 웃던그였다.
그렇게 며칠을 별 탈 없이 지내왔고 지난밤에 다시 열이 올랐다. 정말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은 나의 불안이 병원이 싫다는 그를 퇴근 후 닦달해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응급의학과 의사는진찰후다양한 검사 했고,분주한 간호사들은 수시로 격리된 일인 응급병실을 들락날락하며 체온과 혈당을 체크했다.
계속되는 모든 의료행위는 그의 기운을 빠르게 바닥나게 했다. 해열제 투여로 식은땀이 흘러 뜨겁던 몸은 이내차갑게 식어 빠르게 오한을 데려왔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을 쉴 새 없이 내보내는 히터의 열기로는 데워지지 않는 그의몸이 이불을 꽁꽁 싸매며 까무라들 듯 잠이 들었다. 미동 없이 잠든 그의모습에나의 불안이높아졌고 수시로 그를 깨워 아무 말이나시켰다.
그 상태로 담당의로 매정된 의사는응급 수술 중이라 계속 기다려야만했다. 며칠째 감기로 힘들어하던 아들도 지쳐열에 달궈진 빨간 볼을 하고 계속 나를 보챘다. 이런 모든 상황과 수시로 들락이는 의료진 탓에 나의 불안에빨갛게 켜진 경고등이 막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낼 기세를 하던 순간 담당 의사가 병실문을 열고 들어 왔다.
이미 응급의학과 의사로부터 그의 상태를 전해 들었고 각종 검사결과를 확인한 후라 그와 몇 가지 문진을 통해 입원을 권했다.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고열이 몇 주째 발생한 걸로 보아불명열일 가능성을 진단하며입원을 통해 열의 원인으로 의심 가는 곳을 집중적으로 추적 검사할 필요를 설명했다. 그렇게 응급실로 들어간 지 꼬박 4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입원이 결정됐고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응급실의 자동문을 통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작아 보이던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입원 후 그의 상태는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부터 좋아졌음이 느껴졌다. 우려와 다르게 열의 원인을 빠르게 찾아내 꼬박 일주일간을 입원 치료 후 집으로 돌아왔다.그의부재로 집안 곳곳에 무겁게 가라앉았던 불안의 안개는 출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걷어졌다.
2023년은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우리 가족이다. 이제 겨우 달력의 한 장이 남았고 그 안의 무수한 나날들 중 단 하루만이 우리 가족과 함께 2024년을 기다리고 있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참으로 빠르게 우리들을 관통해 지나쳐갔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을 잘 보내고 곧 다가올 2024년을 힘차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내년은 십이간지 중 다섯 번째 동물인 용의 해인 갑진년으로 특히 권위와 힘, 풍요로움의 상징인 청룡의 해이다. 부디 모두의 마음이 편안하며 풍요롭고 강력한 에너지가 넘치는 한 해이길 기대해 본다.